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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오영수 문학관'에 다녀왔다. 차일피일하다 문을 연지 다섯 달이 다 돼서야 찾아 나선 첫 발걸음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문득 지난 일이 떠올랐다. 선생이 말년에 웅촌 '침죽재(枕竹齋)'에 둥지를 튼 이듬해 1978년 초가을 어느 날 해거름이었으리라. 

 '중구 옥교동 버스정류장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서상연(徐相演) 선배를 만났다. 손에는 제법 큼지막한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어딜 가시느냐고 묻자, 웅촌 침죽재에 간다고 했다. 오 선생께서 고래고기를 자시고 싶다고 급히 연락을 해와 장생포에 가서 사가지고 간다고 했다.' 

 그렇게 선배는 선생을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선생께서 필요한 것이 있다고 연락이 오면 어떻게든 구해 가져다 드렸다. 울산 나들이를 한다고 연락을 해오면, 자신의 그날 일정은 미루고 선생을 모시고 다녔다. 돈을 대는 것은 당연히 선배 몫이었다. 아들이라도 그런 아들이 없었다. 

 물론 선배와 선생은 이전부터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선생의 정갈하고 서정적인 소설세계가 한없이 좋아서, 육친의 정으로 모셨던 것이다. 선생은 고향 땅에 새 터를 마련했지만, 외지나 다름 없었다. 고향의 문인이라야 선생의 이름과 작품이나 알고 있었을 뿐, 교류를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쓸쓸한 나날이었다. 선배를 만난 것은 선생 말년의 큰 복이었다.

 이렇게 지난 일을 장황하게 서술한 것은 문학관의 존재 이유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오영수 문학관은 일차적으로 선생의 문학세계를 잘 정리해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언양 또는 울산과의 관련성을 결코 빠뜨릴 수가 없다. 그것은 문학관이 자리잡은 곳의 정체성을 나타낸 작품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뜻과도 상통한다. 

 오영수 문학관은 어떤가? 전시실을 19개 코너로 나눠 구성했다. 입구에 선생의 흉상이 놓여 있다. 바로 뒤 벽면에는 선생의 일생과 작품세계를 설명해 놓았다. 선생의 그림과 글씨에다 유품인 먹과 벼루, 연적, 자기, 담배 파이프, 베레모, 만돌린 등도 전시돼 있다. 

 청·장년기에서 만년까지의 모습을 담은 12점의 사진이 나란히 전시돼 연대기별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창작실이 갖춰져 있고, 소설 '갯마을'의 등장 인물과 마을을 닥종이로 재현해 놓았다.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와 그들과 찍은 사진, 소설가 윤정규의 영전에 바친 육필 원고도 있다. 

 데뷔 과정과 한국 문학의 산실 '현대문학' 편집장으로 재직할 때의 역할도 소개돼 있다. 소설집 '머루'와 '명암', '메아리', '잃어버린 도원'과 '황혼' 등의 초판본도 전시돼 있다. 그들 소설의 줄거리를 들을 수 있게 오디오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그럼에도 선생의 생애에 상징성을 갖고 있는 말년의 침죽재 생활과 고향에서 보낸 유·소년기의 진솔한 삶을 표현한 작품을 소개하지 않은 것은 정말 모를 일이다. 고향을 소재로 쓴 주옥 같은 소설이 있는데도 말이다. 1967년에 발표한 자전적인 성장소설 '요람기'와 '삼호강'은 울산을 감칠맛나게 묘사한 소설이다.

 그 소설에 맞춰 언양 사람들의 가슴을 흥건히 적시며 낭창낭창 흐르던 남천과 삼호강의 옛 모습과 풍물을 재현한다면 그보다 더 멋진 전시물이 어디 있으랴. 경남대학교 교수인 정일근 시인은 이미 2010년 8월 25일자 울산신문을 통해 '요람기'를 오영수 문학관에 접목해야 한다고 울산시와 울주군에 제안했다. 침죽재도 매한가지다. 전시 연출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문학관의 설명문도 전면 수정했으면 한다. 비문(非文)이 상당수에 이른다. 문학관이라면 설명문의 하나하나가 어법에 맞아야 한다. 입구의 '오영수는 누구인가?'란 여섯 단락의 설명문을 보자. 제목이 '우리나라 대표 서정 단편소설작가 오영수'로 돼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소설가 오영수'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본문도 고쳤으면 한다. 

 둘째 단락을 보자. 한 문장으로 돼 있는데, 서너 문장으로 나눴으면 한다. 마지막을 '시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하기 이전에 시작(詩作) 활동을 했다.'고 적었다. '소설가로 등단하기 이전에'를 앞쪽의 '경남여고에서 교편을 잡으면서'의 뒤로 옮겨 '경남여고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소설가로 등단하기 이전에 『중성』에 '바다'(1946)---'로 하는 것이 한결 이해하기가 쉽다. 

 특히 '현대문학'에 대한 설명문도 고쳐야 한다. 문장이 꼬여 있다. 그 밖의 설명문도 예외가 아니다.
 그 날 근무중인 도슨트도 "얼마 전 방문한 한 문필가도 설명문을 읽어 보고는 몹시 놀라더라"고 했다. 하루빨리 선생에게 누(累)가 가지 않게 전시물을 고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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