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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7일. 닷새 전 그 날은 울산에 문화원이 생긴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었다. 쉰 살 생일을 맞았지만, 그 날 울산의 5개 구·군 문화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50주년이라고 하여 부산을 떨고 반드시 무슨 행사를 거창하게 떠벌일 이유는 없다. 하지만 5개 문화원이 함께 민선 6기의 새 시대를 맞아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조촐한 자축의 자리라도 마련했으면 했다.

 울산의 문화원에게 지난 50년의 세월은 그냥 그대로 흘러온 보통의 50년이 아니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50년 전 1964년은 울산공단 건설이 착수된지 2년이 지난 때로, 울산은 온통 산을 허물고 바다를 메워 공장을 짓는 일에 내몰렸다. 풍요로운 삶터를 일구고 정체성을 바로 세울 문화예술은 사치로만 여겨졌다. 문화예술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문화의 불모지가 됐다. 

 그런 때에 지역문화 진흥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울산문화원'이 태어났다. 1995년 2월에 발간된 '울산문화원 30년사'의 138쪽에 기록돼 있다. '1964년 6월 27일 '사단법인 울산문화원'의 창립총회를 열었다. 원장으로 박영출(朴榮出), 부원장으로 박공업(朴功業)·김규현(金揆鉉)씨, 그리고 이사 15명과 감사 2명을 뽑았다. 업무는 북정동 삼일회관에서 봤다. 그 해 10월 13일 공보부로부터 울산문화원의 설립인가를 받았다.' 

 울산문화원은 지방문화사업조성법에 의해 만들어진 당시로서는 울산 최초의 공적인 문화단체였다. 그래서 가장 치중해야 할 전통문화자원의 발굴·전승과 함께 일반 문화예술사업을 비롯한 각종 문화 관련 사업을 도맡아야 했다. 문을 연지 4년 뒤 1968년 12월 말에 현재 남구문화원이 청사로 쓰고 있는 울산문화센터 건물을 준공함으로써 사업을 펴는데 날개를 달았다. 

 울산문화원은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행사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치렀다. 당시 행사를 맡아 치를 마땅한 기관이나 단체도 없었다. 시민위안 노래자랑대회와 레크리에이션 발표회, 시민교양강좌, 보건강좌, 독서 좌담회, 미취학아동 명찰달기운동, 내고장 발전상 전시회 등 지금의 문화원이라면 생각조차 않을 행사를 펼쳤다. 더욱이 '울산공업축제'가 정착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1967년 4월 20일부터 22일까지 제1회 울산공업축제가 열렸다. 울산공업축제는 '제2단계 경제개발을 위해 새로운 의욕을 드높이는 공통의 광장을 닦는 획기적인 시발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공업축제는 볼거리가 없던 당시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축제기간에 울산시가지에는 인근 농촌지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울산문화원은 시민들에게 큰 위안처로 인식됐고, 동시에 절대적인 사랑과 격려를 받았다. 열악한 인적·물적인 여건 속에서도 문화원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전통민속의 발굴과 재현에 힘썼다. 쇠부리놀이와 물당기기놀이, 마두희 등을 발굴했다. 지역사 연구에도 불씨를 당겼다. '울산문화재'와 '울산울주향토사' '울산임란사' '처용연구논총' 등을 펴냈다. 압권은 1986년 10월 무려 1천쪽이 넘는 '울산지명사'를 펴냈다는 점이다. 

 울산문화원은 오로지 울산의 문화창달과 전통문화자원의 발굴과 전승에 힘쓰다, 1997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운명을 마쳐야 했다. 기초자치단체 별로 문화원을 두어야 한다는 관련 법률에 의해 문을 닫아야 했다. 1999년 9월 울주문화원을 시작으로 5개 구·군에 차례로 문화원이 생기면서 결국 지난한 역사를 마감했다. 그로부터 울산은 5개 문화원 체제로 바뀌었고, 2002년에는 협의체인 울산문화원연합회가 생겼다. 하지만 울산문화원의 창립정신은 당연히 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닷새 전 지난 6월 27일이 울산에 문화원이 태어난 역사적인 날인데, 그대로 보낼 수는 없잖은가. 문화원장이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다섯 명이나 되면서 생일을, 그것도 기념비적인 50주년 생일을 챙기지 않은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가 있을까? 

 아무리 문화원이 5개로 나눠졌다고 하지만, 5개 문화원의 뿌리는 50년 전에 생긴 '울산문화원'이다. 조촐한 기념의 자리를 마련하여 역경의 길을 헤치며 불모의 땅에 문화의 꽃을 피운 선배 문화원 종사자를 추억하면서 지난 50년을 뒤돌아보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어야 했다. 유명을 달리한 선배 문화원 종사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시민 속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따가운 지적을 받는 5개 구·군 문화원이 깊이 반성해야 할 점이라고 하겠다. 시대정신에 투철한 문화원으로 태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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