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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신문은 7월부터 매주 수요일 독자들에게 맛깔난 감상이 담긴 그림 한 점을 선사합니다. 서양화가 김창한, 김덕진, 동양화가 기라영, 갤러리 아리오소 윤태희 대표가 전하는 4인 4색 그림감상법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김덕진 作 '자기들만 찍고'(1996) Oil on canvas, 91x116.7.

 

김덕진 서양화가

제 초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 당시 카메라는 매우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가끔 우리 동네에도 리어카에 커다란 그림을 싣고 다니는 사진사 아저씨가 오시곤 했습니다. 이동 사진관인 셈이지요. 동네 사람 중 누군가 사진을 찍으면 괜스레 마음이 두둥실 뜨곤 했어요.

 

    아저씨의 리어카에는 멋진 물레방아 풍경, 서울의 궁전 풍경의 그림들과 양복, 한복 ,신발까지 모두 구비돼 있었고, 심지어 아저씨가 손수 머리손질까지 해주셨습니다. 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유럽풍 엔틱 의자에 앉으면 사진기 셔터가 눌려집니다. 어려서인지 그 광경은 정말 신기하고도 부러웠습니다. 멋진 풍경그림 앞에서 폼 내어 사진 찍고 싶다고 어머니께 늘 졸라 댔으나 좀처럼 허락해 주시지 않으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도 카메라가 생겼답니다. 기억으로는 작은 고모부께서 해외 근무를 마치고 카메라를 선물로 사오셨던 것 같습니다. 카메라가 생긴 이후 아버지는 사진 찍는 연습을 하셨습니다. 한 날은 동네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놓고 사진을 찍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갑자기 사진을 찍는다하니 세수하고 온 아이, 제일 예쁜 옷을 골라 입고 온 아이, 머리를 단정히 빗고 온 아이 등 나름 잔뜩 폼을 잡고 온 아이들도 있었고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은 놀던 차림 그대로 와서 찰칵하는 소리에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시절 동네아이들과 함께한 유일한 자료이기에 저에게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더 없이 소중한 사진이 됐습니다.

 12년이 흘러 작업을 하면서 이 사진을 유심히 관찰 하다 보니 우리들 옆 저쪽에 홀로 서 있는 어린아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아이는 왜 이러고 있지? 그땐 왜 몰랐을까?" 사진 찍을 때는 빠진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 그 외톨이가 자꾸 말을 걸어 옵니다. "나도 좀 같이 찍어 주지, 내가 누구인지 알겠니?" 하고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얘가 누구더라? 그래 저 아래 돌담 집에 새로 이사 온 아이였구나! 그래서 말도 못하고 거기서 외톨이로 서 있었구나!'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너의 마음을 알게 됐네. 미안해! 그리고는 작품에서 그 외톨이가 주인공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성인이 돼서도 여러 이유로 친구나 회사 무리 속에 끼지 못해 속상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좋은 사이라도 애매한 상황 속에 살짝 어색한 순간이 우리 일상에는 늘 존재합니다. 잠시라도 짬을 내 지금 내 옆에 속상한 사람이 없는지, 주위로 부터 소외된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의 작은 관심이 때로는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이들에게 순간의 답답한 마음을 열어주는 맑은 공기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덕진 작가는 동경도미술관 JALLA전(2008)을 비롯해 개인전 11회, 울산, 부산, 대구, 광주, 제주 등지에서 기획전 및 단체전, 2014년 서울아트쇼, 부산아트쇼에 참여했다. 현 북구예술창작소 입주작가로 신라대에 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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