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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옥곤은 말을 아끼는 작가다. 말만 아낄 뿐 아니라 소설도 드물게 익을 대로 익은 작품만을 발표하는 뛰어난 작가이다. 울산에 대한 역사와 인물사, 뒷골목의 이야기를 많이 알면서 그것을 함부로 말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가 최근 신문에 칼럼 한 편을 실었다. '다리에 관한 단상'이었다. 그런데 김옥곤도 외국의 이름난 다리를 열거하고 또 삼호교의 내력을 밝히면서 삼호다리가 이용범의 다리라는 것을 전혀 말하지 않았다.

 이용범의 다리는 자유당 정권 때 국회의원으로 경상남도 도당 위원장이던 이용범이 영향을 미치면서 건설한 다리를 말한다, 당시 이용범은 다리를 건설하는 것 외에도 각종 건설공사에 개입하고는 영향력을 행사해 부당하게 이득을 챙겼었다. 이를테면 경상남도내의 크고 작은 건설공사에 대해서는 자유당에 바치는 후원금 명목으로 공식인양 공사금의 절반을 떼고 나서 허가를 해 주도록 했던 것이다.

 공사비를 절반이나 떼고 난 돈을 받게 된 그 공사가 제대로 될리 없다. 그렇지만 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공사를 따내야만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실력자 이용범에게 줄을 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용범은 이렇게 거둬들인 돈을 자신이 챙길 만큼 챙기고는 중앙에 갖다 바치면서 이기붕의 신뢰는 물론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돌아보면 우리들은 참 희한한 세상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렇게 누적된 부패가 고리가 되어 세월호의 참사를 불러온 게 아닌가?

 삼호교가 이용범의 다리로 논란이 된 것은 울산 출신의 정치인으로 지역사회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최영근 전 국회의원에 의해서였다. 최 전의원의 정치적 입문이 된 경상남도 도의원 후보로 나서 정견 발표를 통해 폭로하게 되자 삽시간에 유권자들이 자유당 후보를 외면하게 됐고 삼호교를 찾아가서 규탄대회를 가지게 되니까 최의원은 무난히 당선이 되었던 것이다.

 이용범을 향한 규탄은 최의원의 폭로를 계기로 경남도내 전 선거구에서 일제히 들고 일어나게 되었다. 선거결과는 여실히 민주당쪽이 톡톡히 덕을 보게 된 결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렇지만 구 삼호교가 아직은 무너지지 않고 사람들이 도보로 걷는 다리가 되고 있으니 울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다리가 되었다.

 울산시민들과 함께 역사를 같이한 다리는 울산교가 아닐까 한다. 중구와 남구를 잇는 울산교는 1950년 이전까지만 해도 더위가 삼복에 이르는 때가 되면 돗자리와 베개를 들고 밤잠을 자러오는 사람들로 붐볐다.

 낮에는 타작을 한 벼를 말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만큼 교통량이 없었다는 얘기다. 일제 강점기 울산교를 건설하면서 수 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 사상자 대부분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고 어릴적 그 다리만 가면 들려주던 어른들의 회고담이 아직도 생생이 남아있다.

 당시에는 건설장비가 변변치 않았을 뿐 아니라 기술자가 아닌 단순한 부역자들로 동원된 사람들이 공사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용범의 다리인 삼호교가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으로 돼 있다니까 울산으로서는 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시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다리를 건너면서 마음에 새겨야할 다짐을 해 둘게 있다. 지난날에는 그렇듯 수치스럽게 살았던 우리들이었지만 다가올 미래에는 부정과 부패를 멀리하는 오늘의 세대가 되기 위해 다짐하는 것이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의 원조가 되는 이용범의 다리, 그 삼호교는 비록 낡고 허물어지기 직전에 있지만 그 다리를 거울로 삼아 우리고장에서만이라도 부정과 부패가 없는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보면 개똥도 약으로 쓰이고 비상도 약이 된다는 말이 삼호교를 두고 해도 괜찮을성 싶은 생각이 이용범의 다리에 가면 떠 오를 것 같다. 그리고 머지않아 준공이 될 울산대교는 그런 우리의 염원이 담긴 다리로 태어나 주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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