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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향에 갔다가 사촌 오빠를 만나 "딸그마니도 이젠 쉰이 넘었구나. 세월 참 빠르네" 하는 말을 듣고 뭉클한 적이 있다. '딸그마니'는 어릴 적 내 별명이다. 내가 셋째 딸인데, 이제 내 밑으로 더 이상 딸을 낳지 말라는 뜻에서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고등학교 이후로 별명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그것도 아주 어릴 때 별명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는 어릴 때의 별명을 화제로 삼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큰언니의 별명은 '능나리'였다. 큰언니가 이 별명을 불만스러워 하자 오빠들은 "얼마나 좋아. 능은 임금의 무덤이고 나리는 높은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잖아. 능나리, 능나리. 좋기만 하구만"하고 얼버무렸지만, 정확한 뜻이나 내력은 아무도 몰랐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큰언니는 이 별명으로 불렸던 것 같다.

 작은언니는 피부가 희고 머리칼과 눈동자가 갈색이라 이국적인 외모였는데, 그래서인지 별명이 '노랭이'였다. 우리 형제 중 유일하게 눈이 쌍꺼풀이었던 작은언니는 외모를 풍자하는 이 별명을 오히려 좋아했다. 아마 작은 눈에 까무잡잡한 우리보다 자신의 이국적 풍모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그래서 나도, 큰언니에게 와는 달리 작은언니에게는 "노랭이 언니, 노랭이 언니"하고 별명을 부르며 놀리곤 했다. 인색한 구두쇠를 노랭이라고 한다는 걸 뒤에 알았지만, 작은언니의 외모는 워낙 두드러져서 어차피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육촌 중에 미군과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는 언니가 있었다. 어릴 때 그 언니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온 적이 있다. 꼬불꼬불 영어와 미국 우표도 신기했지만, 크고 두꺼운 카드는 정말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다. 밝게 타오르는 촛불 아래 빨간 포인세티아와 초록색 호랑가시나무가 선명하게 인쇄된 고급 카드였는데, 변변한 인쇄물이 없던 시절, 그 총 천연색 카드는 귀한 보물과 같았던 것이다. 카드 속에는 가내 안부와 평안을 두루두루 물은 뒤에 '막내와 노랭이도 잘 있지요? 보고 싶네요'라는 글귀가 써있었다. 막내와 노랭이. 나와 작은언니는 이 구절을 두고 서로 카드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투었던 것이다.

 '딸그마니' 외에 재잘재잘, 때갈때갈 말을 잘한다고 '때가리', 그때는 보기 드문 안경을 일찌감치 써서 눈이 네 개라는 뜻의 '목사', 그리고 문학소녀였던 고등학교 때는 '원시인'이란 별명도 있었다. '원시인'을 끝으로, 그 뒤 내 이름 외에 별명을 가져본 적은 없다. 물론 컴퓨터상으로, 본명이 아닌 닉네임이란 걸 사용하기도 한다. 별명을 영어로 닉네임이라고 하지만, 온라인상의 닉네임과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별명은 좀 다르다. 닉네임이 자기 스스로 만든, 익명성에 기댄 제 2의 이름 같은 것이라면, 별명은 그 사람의 외모나 성격, 특징을 잡아 다른 사람들이 붙여주는 것이다.

    남편의 어린 시절 별명은 '보리까끄라기'였다고 한다. 하도 까탈스럽고 별나서 붙은 별명이라는데, 이 경우는 성격을 빗대어 지은 별명이겠다. 영서란 친구는 이름 때문에 '염소'란 별명이 붙었고, 소풍 때 잘못해서 친구 도시락을 깔고 앉은 학생은 오랫동안 '엉덩이'란 별명으로 놀림을 받았다.

 이처럼 대개 별명은 침소봉대의 과장과 위악적인 장난, 놀림의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 번 붙은 별명은 어지간해서 바뀌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별명으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사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재미와 친근감, 더없는 생활의 활기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별명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 때 세계사 선생님의 이름은 잊었지만 '크레이지 독'이라는 별명은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다.

    반면 닉네임은 쉽게 바꿀 수 있고, 그만큼 쉽게 잊혀진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네르바'라는 닉네임으로 주목 받은 네티즌이 있긴 하지만, 대개의 경우 닉네임은 종이컵이나 위생장갑 같은 일회용품 이미지를 준다. 하지만 별명은 조심조심 아끼며 입다 끝내 작아져버린 플란넬 원피스 같은 것이다. 그 오래된 천의 냄새, 그 희미해진 체크무늬. 그리고 올과 솔기마다 얽힌 갖가지 이야기들.

 이젠 더 이상 '딸그마니'도, '원시인'도 아니다. 하지만 친정에 가면 아직도 나는 막내이다. 작은언니는 더 이상 '노랭이'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막내'이다. 자, 이제 육촌언니가 보낸 카드의 임자는 결정되었다. 아, 하지만 어쩌겠는가. 집을 고치고 이사를 하는 통에 카드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것을. 다만 아직도 밝게 타오르는 촛불 그림과 '막내와 노랭이도 잘 있지요? 보고 싶네요'하는 글귀만은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그리고 나는 얼굴도 잊어버린 어린 시절의 육촌 언니에게 가만히 답을 하는 것이다. 그럼요. 잘 있고 말고요. '양철집'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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