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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미술관] 이 물로 밥해야지
김덕진 서양화가
2014년 07월 29일 (화) 16:33:21 김덕진 webmaster@ulsanpress.net
   
 

나는 요즘 북구예술 창작소라고 하는 레지던스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곳 북구 레지던스 공간에는 영상, 퍼포먼스, 설치, 사진, 회화 등 각기 다른 장르의 작가 5명이 입주해 있으며  나는 거의 매일 그곳으로 출근한다.

 그날은 여우비가 조촐하게 내리는 아침 이었다. 우리 집에서 타박타박 오 분 걸어 마을버스를 타고, 신복 로터리에서 104번 버스로 여유롭게 환승을 했다. 버스의 좌석은 이미 다 차버렸고 마지막 뒷좌석에 세 네 살쯤 보이는 남자 아이가 엄마와 이모로 보이는 두 여성분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 꼬마가 참 귀여워 보였다. 마침 꼬마가 앉은 줄에 한자리 비어 있었다. 재빨리 그 자리에 앉으며 나는 기분 좋게 그 어린 꼬마 친구 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귀여운 꼬마가 시크하게도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꼬마 엄마도 아무 일 없는 듯 무심코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선글라스를 착용해서 무서워 보이나 보다'라고 생각 했다. 내심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버스는 한참을 달렸고 성남동에서 아이 엄마가 아이를 들고 급하게 내리는 문 쪽으로 가는데, 아이의 작은 몸은 얼굴이 엄마 팔에 눌려진 상태로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고개를 살짝 내밀더니 동그란 두 눈으로 웃음을 내게 던진다. 그러고는 손을 겨우 빼내어 그 작은 고사리 같은 손을 나에게 흔들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버스 탈 때 나의 서운한 마음은 눈 녹듯이 녹아 버렸다. 받은 인사를 작은 마음에 품고 있다가 잊지 않고 기억 해주는 그 아이가 나에게는 너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아이의  순수성은 조금은 삭막했던 내 마음에 추억의 문을 열어 주었다.
   
 


 내가 다섯 혹은 여섯 살 즈음으로 기억이 난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이었다. 동네아이들도 모두 집으로 숨어 버리고 동네가 빗소리에 잠겨 고요했다.

 여름 장맛비인 듯하다. 어머니가 그날은 아프셔서 혼자서 꽤나 심심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어머니가 잠시 잠든 사이 몰래 새로 산 노란색 구두를 신고, 빨강색 우산을 펴들고 집 앞에 나가 보았다. 비가오니 그날의 느낌은 어둡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우산에 또르르 굴러 내리는 빗방울들이 너무 커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때 어디선가 큰물소리가 세차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집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우리 집 위의 지붕에서 낙수 물이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참 신기해 보였다.

 당시에는 물이 귀한 시절 이었다. 어머니가 오후 해떨어질 시간쯤 되면 공동 수돗가에 줄을 서서 물동이와 양철바구니에 물을 길어다 쓰는 일이 늘 힘들어 보였다. 어린 마음에 작은 주전자를 들고 가서 물을 길러오는 일을 거들어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서 자라서 힘이 쌘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 생활풍경을 경험해서 인지 그날의 낙수 물은 어린 나에게 너무 고마운 물로 생각이 들었나보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과 장난기가 많은 나는 우산을 쓰고 그 물줄기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물줄기가 너무 힘차서 우산이 부러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문득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집으로 들어가 양철바구니 한 개를 들어다 낙수 물 떨어지는 위치에 놓아 보았다. 와우! 순식간에 바구니에 물이 차오르는데 내 마음도 뿌듯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이물을 받아다가 밥을 하면 되겠구나!' 그 생각으로 여러 차례 물을 길러 집안의 물통에 물을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온몸이 빗물에 젖고 팔이 아파왔다. 드디어 물을 가득 채웠을 때 잠에서 깬 엄마가 나오시더니 칭찬은커녕 도리어 야단을 치셨다. 먹는 물 길러 놓은 물통에다 빗물을 섞어 버렸던 것이다. 순간 내 머리 속이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의 놀란 기억이 그때는 무척 당황하고 속상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뒤 기억 속에 귀퉁이를 맴돌다 놀라고 당황한 기억은 잊어버리고 첫 마음 '이 물로 밥해야지' 라는 그 순진했던 마음과 낙숫물이 양철 바구니에 빨리 차오르던  즐거움만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 물로 밥 해야지', Oil on canvas, 25x61cm(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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