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30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는 새누리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한판의 스릴 있는 드라마, 아니 스릴만점의 서부 활극영화를 연출해준 선거였다.

 대선주자로 널리 알려진 야당의 손학규 후보를 여당의 정치신인이 거뜬히 물리치고 여의도행 티켓을 타내는 모습이라든가, 피부를 가꾸는 일로 덤터기를 쓰고 무너졌던 나경원 후보가 해괴한 정치의 관습이 된 이른바 연대의 벽을 넘고 활짝 웃는 얼굴로 꽃다발을 목에 거는 모습, 특히 호남이면서 비호남으로 불리며 연속으로 쓴잔을 마시던 아픔을 딛고 자전거를 끌며 선거운동에 나선 이정현 후보가 결국 승리의 월계관을 쓴 모습은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선거에서 특별히 시선을 보내야 했던 이런 타 지역은 그렇다 치고 우리고장의 선거역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기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박맹우 후보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당선이 확정되었음을 알리는 TV 자막이 떴을 때 나는 숙연한 마음으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었다.

 오래전 세상을 하직한 김태호(金泰鎬)의원의 얼굴이 불현듯 생각나서였다.

 그는 중고등학교의 선배이면서 집안의 인척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주변인물로 불렸던 모양이지만 그러나 그 앞에서 나는 언제나 야당이었다.

 박맹우 전시장이 처음으로 울산시장이 될 당시 그는 여당내의 실력자로 올라 있었고, 때문에 각 곳의 공천은 물론 울산과 경남지방의 공천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후일  울산시장이 될 인물 찾기에 고심하고 있던 김의원이 어느 날 밤늦은 시간에 전화로 불렀다. 나는 약속한 장소로 가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날 낮에 차에 동승하고는 상가(喪家)를 오가면서 내내 주고받았던 후임 시장의 공천 문제이겠지 하면서 혹시나 시중에 떠돌고 있는 학교 동기생이자 최측근인 인물로 꼽히는 사람을 내세우려는가 보다 하면서 만약 그 짐작이 맞아 떨어진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분이 먼저 말을 해왔다.
 야! 결정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맞는기라. 누구냐고 다시 물을 새도 없이 '박맹우다' 하며 무릎을 치는 것이었다.

 첫째, 나이가 젊고 뭐니뭐니 해도 행정고시 패스 그리고 그보다는 내무부 종합 상황실장을 했는데 그 자리는 아무에게나 맡기는 자리가 아니란 말야!.
 그분이 그렇게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밝히던 박맹우 전시장이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 후 그분이 돌아가신 다음 막내처남인 태연학원 이동성 원장이 나에게 일러주었다.

 '형님! 그 많이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 묘에 와서 술 한 잔 올리며 절하고 가는 사람은 박맹우 시장 한 사람뿐이더라고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모르고 지낸 사람도 아닌 박맹우 당선자의 이름 석자가 가슴깊이 각인되고 있었다. 이번 선거기간에는 더욱 그 말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것 같았다.

 선거기간 지원유세차 울산에 달려온 정몽준 의원의 말처럼 박맹우 당선자는 울산을 공해도시, 문화의 불모지란 오명을 말끔히 씻어버린 박맹우 시장이었다. 중앙의 정치무대에서 또 한 번 그의 타고난 명석함과 뚝심 그리고 의리가 이 나라를 청정한 나라로 반드시 만들어 내는데 크게 한 몫을 할 것이라 믿으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성장을 기대해 본다.

 송철호 변호사. 나는 그를 잘 안다. 이번의 고배가 다섯 손가락을 넘어선 것 같은데 그는 여전히 밝은 얼굴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부산 태생이면서 뒤집어 쓴 호남태생이란 소리를 애써 바르게 바꿔놓으려 하지 않은 채 늘 그 하나의 이유로 손해를 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기를 수십년 그는 울산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제 그에게 외지사람이라고 말하기가 껄그러울 정도가 되었다.
 울산의 깊고 낮은 곳, 울산의 어두운 곳을 그만큼 많이 아는 외지인도 아마 드물 것이다.

 내가 K신문사의 대표로 있을 때 회사 직원 한사람이 시청의 출입기자 대여섯명과 함께 부산지방검찰청으로 연행되어간 일이 있었다.
 사건의 전후좌우를 변호사인 그가 알아보고는 이것은 한 못된 건설업자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이라 판단하고 나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당시 부산 지검장으로 있던 형님인 송정호 검사장에게 전화를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의 직원 한사람을 구하기 위해 부산으로 가서 사정 얘기를 올리게 되었다. 송정호 검사장은 차장검사를 불러 또 다시 사건의 내용을 묻고는 나에게 걱정 안해도 될 거 같다고 말했다. 그 송철호 변호사의 형인 송정호 검사장이 나는 내 동생이지만 동생의 정직함을 믿기 때문에 풀어준다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의 직원뿐만 아니라 타 회사 기자 모두를 풀어 주었다.
 아무튼 그의 패배를 위로하면서 그 특유의 의지로 정의로운 길을 더 활발하게 걸어 가주기를 바랄뿐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