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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내가 다니는 '정토사'에서 '임종을 앞두고 미련 없을 만큼 의미 있게 살라.'라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왔다. 덥다는 핑계로 시원한 콩국만 찾다가 보낸 칠월 한 달이 은근히 아까웠다. 거실 수족관 안에 갇힌 금붕어는 만사가 귀찮은지 먹이를 줘도 미동 없다가 얼음 몇 알을 넣어주자 금세 지느러미와 꼬리를 흔들어 보인다. 나만 더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자신의 임종시간을 예측하지 못한다. 불현듯 닥친 사고로 생떼 같은 목숨을 잃거나 희귀병으로 한평생을 서리서리 고통스럽게 지내게 되는 것이 인간의 수명이다.

 지난 세월호 참사도 그렇다. 이제 막 피어나는 아이들이 부푼 마음으로 나섰던 제주도 수학 여행길이 이승의 마지막이 될 줄을 짐작이나 한 일이었던가. 어처구니없음에 가족은 물론, 온 나라가 생 몸살을 앓지 않았던가. 마른하늘에 날벼락, 청천벽력, 속수무책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결국, 그 시발점은 어른들의 탐욕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목숨은 일회용이라 어떤 방법으로든 보상되지 않는다. 

 사람뿐 아니라 미물도 매한가지다. 한해 여름철만 사는 매미나 모기, 하루가 평생인 하루살이가 있다. 시아버지 모기가 집을 나서며 '오늘 저녁밥은 준비하지 마라. 길가다가 애꿎은 놈을 만나 한방에 얻어맞아 죽을 수도 있고, 요행히 어진 사람을 만나 배가 불룩해져 돌아올지 모른다.'라고 했다는 유머처럼. 우리는 불현듯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절기로 '처서'가 코앞이라 가을 배추씨앗을 묻을 요량으로 근처 텃밭을 찾았다. 그간 오락가락한 장맛비가 쓸데없는 잡풀들의 기세만 부추겨 놓아 온통 난장판이다. 장마철은 다잡아 간수하지 않으면 삽시간에 풀밭이 되고 만다.

 우선 부추 밭에 난 풀을 뽑는데, 옆에 있던 건장한 들깨 순이 가는 부추 허리를 무겁게 밟고 삐딱하게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몇 해째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내 눈에는 불편한 건 다 허리로만 보인다. 어느 시인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만 보여야!'라고 시구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그 짝이다.

 들깨 순을 뽑아버려야 했다. 아직 무성한 들깨 순은 웬만큼 당겨서는 뽑히지 않았다. 양팔을 걷어붙이고 통통한 순을 싸잡아 쥐고 바짝 힘을 주고 난 다음에야 내가 이겼다. 들깨 순은 한창 젊고 할 일이 많을뿐더러 아직은 억울하다는 듯 시퍼렇게 손 사래를 쳤지만, 내 손에 뽑혀 밭둑으로 던져졌다. 그제야 부추와 나는 시원하게 허리를 펼 수 있었다.

 밭에서 제일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친구는 역시 고춧대다. 그간 그런대로 열매를 달아주었지만, 고약한 탄저병에 걸려 시커멓게 숨을 할딱거리는 모양새가 딱할 지경이었다. 이참에 뽑아내고 거기에다 배추씨를 파종하는 것이 나을 성 싶었다.

 고춧대는 쉬 자리를 비켜주며 이파리를 밑거름으로 보탰다. 주인 판단으로 싱싱한 들깨 순이 애먼 죽임을 당한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밭둑으로 던져버렸던 들깨 순을 찾아 제대로 눕혀주었다.

 '내가 죽을 때는 철저하게 소모된 다음이기를 원한다.'라고 말한 영국의 극작가이자 수필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어록 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는 한때 훌륭한 작품으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한 작가이다. 결코 짧지 않은 95세에 생을 마감하면서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리될 줄 알았다.'라는 묘비명을 새겨 세상 사람들로부터 더 기억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번 죽는 삶이라지만, 예술가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버나드 쇼를 통해서 새삼 깨달았다. 육신은 가고 없어도 불후의 메시지를 남기고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살아 있는 거나 진배없다는 것을.

 지천명이 기울어 하는 내 공부가 무리수가 따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잦다. 가물거리는 기억력과 돋보기 너머로 읽는 독서에 금세 눈이 피로해진다. 다만, 젊어서 한 체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더 진중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은 좀 나은 편이다. 젊어서는 밥을 구한답시고 감성의 자물쇠를 잠그고 지내다가 자식 갈무리를 마치고서야 나름 쉼표를 찍고 시작한 공부가 아니던가. 무엇을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는 없다는데 핑계를 앞세워 자신에게 소홀했던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생은 마치 부싯돌이 마주쳐 일어나는 불빛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라고 했다. 귀한 시간을 우물쭈물 임종시간만 기다리는 바보가 되기는 싫다. 생의 마침표를 찍는 날까지 철저하게 소모되기를 원한다. 텃밭에나 마음 밭에나 쓸데없는 잡풀은 뽑아내고 새로운 씨앗을 파종할 일이다.

 103세의 생을 살다간 일본시인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구순을 넘어 운명처럼 시를 만났다. 늦게 만난 공부였지만, 부지런히 시심을 갈고닦아 마침내 99세 때 시집을 출판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화제를 모은 주인공이다. 그의 시집은 세상을 날아다니며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랑과 용기로 스며들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들어 철저하게 자신을 소모한 시인 시바타 도요는 영원세월을 항성처럼 존재하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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