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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슬로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을 들라면 2012년 대선 후보 경쟁 때 나온 '저녁이 있는 삶'을 꼽을 수 있겠다. 저녁이 있는 삶. 이 슬로건은 시적이고 낭만적인 느낌을 줄 뿐 아니라 빼어난 정치적 함의까지 품고 있다. 저녁이 실종된 우리 삶을 역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인류는 격양가의 한 구절처럼 '해 뜨면 나가서 밭을 갈고 해 지면 돌아와 쉬는(日出而作 日入而息)' 단순한 생활을 누려왔다. 해가 이울고 어둠살이 뻗치기 시작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집으로 향한다. 둥글고 은은한 등불이 켜진 식탁, 식구들의 웃음소리, 두런거리는 말소리. 식사가 끝나면 불가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든다.

 저녁은 낮에서 밤으로 이행되는 어스름의 시간이다. 하늘엔 노을이 붉게 타오르다 점점 자줏빛과 잿빛으로 변해가고 하나둘 켜지는 등불처럼 별들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들판은 어느 순간 희미한 잔광이 사라지고 모래사장으로 밀물이 밀려오듯 어둠이 밀려오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의하면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가 결합하여 낮의 신 헤메라를 낳았다고 한다. 태초의 혼돈인 카오스에서 질서와 조화의 코스모스로 나아가듯, 어둠 속에 이미 밝음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둠은 여전히 미지의 공간, 미지의 시간이다. 낮이 명료한 이성과 질서의 시간이라면, 밤은 감성과 무질서가 지배하는 시간이다. 미지의 어둠은 공포와 신비감을 준다. 도깨비와 구미호의 시간이자 드라큘라와 하이드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낮과 밤의 경계인 저녁은 우리에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암탉이 구구 병아리를 모으듯 식구들이 서둘러 돌아와 함께 모여 있다는 안도감과 포근함, 고된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편안한 해방감과 더불어, 둥근 불빛 너머 막막하게 진을 치고 있는 어둠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과 두려움이 그것이다.

 이러한 밤의 공포는 전등의 발명으로 사라졌다. 전등은 구석에 숨어있던 어둠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몰아내고 밝고 환한 빛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하지만 밤의 공포와 아울러 밤의 신비함도 사라졌다. 대낮 같이 밝은 빛 아래서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처럼 드러나 감추고 숨길 것이 없게 되었다. 스위치를 켜기만 하면 밤이 낮으로 바뀌는 시간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불야성의 시간. 밤이 밤이 아닌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전등의 등장이 가져온 변화는 이처럼 감성적인 부분도 있지만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노동시간의 연장이다. 고용주는 직원들에게 늘 더 많은 시간 일을 시키고 싶어 한다. 낮처럼 밝아진 밤의 시간을 야근이란 명목으로 붙잡아 두는 것이다. 평균 노동시간이 45시간으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편이다. 아울러 밝은 빛은 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습을 강요한다. 학생들은 밤늦게 까지 야간자율학습과 학원의 선행학습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가장이나 자녀의 늦은 귀가는 가정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함께 밥을 먹던 식구들이 이젠 서로 얼굴을 마주하기 어렵게 된다. 한 집안에서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서 쓰는 '숨바꼭질'이라는 영화와 같은 상황이 같은 식구끼리도 벌어지는 것이다. 어둠이 아닌 밝음이 주는 공포, 함께 모일 수 있는 저녁이 실종된 삶.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두려움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만약 '저녁이 있는 삶'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삶은 다음과 같이 변할 것이다. 우선 가정 공동체의 회복이다. 모두들 일찍 돌아와서 함께 저녁밥을 먹고 대화를 나눈다면 오늘날 가정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이른 귀가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촉진한다. 잦은 회식과 야근은 사실 여자들이 직장을 다니는데 큰 걸림돌이자 출산과 육아에도 독이 된다.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이른 귀가를 적극 권장할 일이다.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한다면 일자리 나눔을 용이하게 해서 청년들의 실업난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밤의 유동인구를 늘려 소비를 촉진시킬 수도 있고, 밤거리를 환히 밝힘으로써 치안에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노동시간이 가져오는 비효율과 가정문화의 부재가 주는 각종 청소년 문제, 가정문제 등을 생각한다면 빨리 귀가하여 저녁을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이 훨씬 득이 많을 것이다. 저녁의 회복을 위해 여야, 노사, 장유, 사제 모두 머리를 맞대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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