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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이 '전화앵'의 망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넘기고도 전화앵 영웅만들기에 안달복달하고 있다. 지난 6월의 열세 번째 전화앵제가 본보기다. 아무리 울산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긴 여성이 없다고 할지라도 울산과는 상관없고, 심지어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전화앵에 목을 매달 하등의 이유는 없다. 

 전화앵에 대한 기록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나온다. 경주부 고적 편에 '열박령은 경주 남쪽 30리에 있고, 동도(경주)의 기녀 전화앵이 묻힌 곳'이라고 적혀 있다. 고려 때의 문인 김극기가 전화앵을 그린 한시 '열박령'도 함께 실려 있다. 그러나 전화앵의 신라에 대한 충절은 전혀 기록돼 있지 않다.

 그런 전화앵이 울산 역사의 큰 인물로 등장한 것은 2001년 12월. 울주문화원이 펴낸 울주문화 창간호에 실린 '동도 명기 전화앵의 묘에 대한 고찰'이란 글 때문이었다. 그 글은 이미 5년여 전 1996년 7월 두서면 활천리에서 신라 기생 전화앵의 무덤이 발견됐다면서, 주민 이야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 일치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더욱이 전화앵이 고려에 귀부를 거부하고 신라에 절개를 지킨 의로운 기생으로 명기(名妓)라고까지 주장했다. 그같은 주장은 한 사학자가 1988년 문헌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주민의 이야기를 채록하여 그럴듯하게 엮은 낸 저서를 인용한 것이었다. 그렇게 전화앵은 신라에 절개를 지킨 명기로서 울산 역사의 귀중한 인물로 떠올랐다. 

 울산의 한 예술단체가 2002년 전화앵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에서 추모예술제를 펼치고 나섰다. 울주문화원도 뒤질세라 울주의 인물로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의 역사 인물 선양 흐름과 맞물려 전화앵 영웅만들기에 나섰다. 우리나라 최초의 명기라는 등의 전화앵을 미화하는 온갖 말이 넘쳐 났다. 역사 인물이 부족한 울산의 자격지심이었다. 

 급기야 울주군도 전화앵 선양 사업에 뛰어들었다. 2009년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에 맡겨 전(傳) 전화앵 묘에 대한 발굴조사를 했다. 그 무덤은 전화앵의 생몰 시기로 추정되는 10세기 초보다는 2-300년이 빠른 7-8세기의 묘로 판명났다. 역사 인물로 추앙할 일말의 가능성이 사라졌다. 아쉬운 점이 있었겠지만, 그쯤에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곳이 산업단지에 편입됨을 계기로 새롭게 묘역과 추모비 등이 건립된 문화공원으로 조성했다. 전화앵의 묘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새로 단장한 봉분을 '전(傳) 전화앵 묘'라고 했다. 정말 낯 뜨겁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째서 고고학적으로 이미 판명이 난 무덤을 전화앵의 묘라고 우기면서 지난 6월에 전화앵제를 계속 펼친 속내를 모르겠다. 

 전화앵에 매달릴 그 어떤 근거가 없다. 그는 경주의 기생이었다. 신라에 절개를 지켰다는 근거도 없다. 전해온 무덤도 그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울산과 상관없는 그를 추앙할 이유가 없잖은가. 전화앵을 능가하는 여성으로 박제상의 부인 김씨부인과 김아가다, 이구소 등이 있다. 울주 역사 속의 여성 인물로 선양할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화앵보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 문화콘텐츠 자원으로써도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다. 김씨부인을 살펴보자. 열녀라는 이미지에만 매몰돼 실제의 모습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방아타령으로 유명한 백결 선생이 문량이라는 아들이었다.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둘째 딸을 남겨 문량을 돌보게 했고, 우여곡절 끝에 신라의 이름난 음악가로 자랐다. 백결 선생과 김씨부인, 그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문화콘텐츠다. 

 김아가다는 울산 최초의 천주교 신도 김교희의 손녀다. 집안이 몽땅 천주교도였다. 조선 철종 11년(1860)의 경신박해로 집안이 풍비박산되자 상북 배냇골 죽림굴(대재공소)에서 숨어 살다가 스물다섯에 죽어 살티순교성지에 묻혔다. 이구소는 1894년에 태어나 1991년에 숨진 언양 출신 한시작가였다. 삶은 파란만장했다. 일제 초 전국 규모의 시사(詩社) '신해음사의 회원으로 빼어난 작품을 발표하여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 

 그들 외에도 울산을 통틀면 역사 속의 여성 인물은 꽤 된다. 그렇다면 울산과 상관없는 경주 기생 전화앵에 맹목적으로 매달릴 이유는 없다. 바로 곁에 추앙할만한  인물을 두고도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가치도 없는 인물에 집착하는 못난 짓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전화앵 선양에 앞장서는 울주군과 울주문화원부터 그녀의 망령에서 헤어났으면 한다. 울산의 자존심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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