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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 거야"('드라이브 마이카' 중)
 무라카미 하루키가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국내 출간했다. 2005년 '도쿄 기담집' 이후 9년 만이다.


 표제작 '여자 없는 남자들'을 비롯해 '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 '독립기관' '셰에라자드' '기노' '사랑하는 잠자' 등 7편이 실렸다.
 이 중 '사랑하는 잠자'는 하루키의 요청으로 한국어판 등 해외판에 특별 추가된 단편소설이다.
 지난해 영미권 단편소설 모음집 '그리워서'를 번역하던 중 문득 '장편을 쓰는 것도 지쳤으니 이제 슬슬 단편들을 써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작가는 특유의 짧고 자유분방한 필체로 7편의 단편을 써내려갔다.


 이번 소설집은 책 제목 그대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자를 떠나보낸 남자들' 혹은 '떠나 보내려 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연인이나 아내가 없거나 잃어버린 남자들이 주인공이다. '여자의 부재'는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아내와 사별한 두 남자 가후쿠와 다카쓰키('드라이브 마이 카'), 옛 동료와 동침한 아내와 이혼한 기노('기노'), 일부러 여자와의 깊은 관계를 피하는 도카이('독립기관')…
 대학 시절을 회상하는 '예스터데이'와 카프카 소설 속의 세계를 무대로 한 '사랑하는 잠자'를 제외하면 모두 중년 남자가 주인공이다. 하루키는 연인 또는 아내에게 '비자발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버림받은 남자들의 상실감과 상처를 섬세한 필체로 그려낸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를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 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여자 없는 남자들' 중)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돼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중략) 그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잃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그를 슬프게 했다"('셰에라자드' 중)
 사실 하루키의 소설은 방황하는 청춘에게 바치는 노래와 같았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한 '노르웨이의 숲'은 20대 청춘의 성장통을, '해변의 카프카'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방황하는 소년의 내면세계를 그렸다.


 그런 그가 여자의 부재를 경험한 중년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비슷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작가는 일본어판 서문에서 자신의 경험은 아니라고 고백했지만 비슷한 나이대 남자들 얘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본인의 현재 모습과 감성이 어느 정도 투영된 느낌이 든다.
 기존의 하루키 팬인 20~30대 여성들보다 40대 이상 중년 남성들에게서 더 많은 공감을 얻을 것 같은 이유다. 번역은 '1Q84' 등 하루키의 작품을 번역한 양윤옥 씨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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