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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모레가 추석이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님의 음덕에 감사하며 차례와 성묘를 올리는 추석명절이다. 이미 귀성길은 시작되어 정체현상이라고 한다.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행렬이 긴 꼬리를 물고 거북이걸음이다. 연어가 회귀하듯, 그리운 가족과 고향을 향한 발걸음을 옮기는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가난이 묻어나던 그 옛날 추석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명절맞이 송편을 빚었다. 불린 쌀을 동네 방앗간에서 곱게 빻아온 떡가루를 반죽해 동글동글 소원을 빌듯 양손으로 비벼가며 공을 들였다. 여자는 송편을 곱게 빚어야 잘생긴 신랑감을 얻는다는 속설에 손목이 뻐근하도록 정성을 다했던 기억이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문간방 아랫목에는 어김없이 밀주가 익어갔다. 쌀을 씻어 고두밥을 찌고 누룩을 섞어가며 정성으로 밀주를 빚으시던 어머니. 아무도 몰래 조심조심 낡은 군용 담요를 귀한 손자를 어루만지듯 둘둘 덮어 문간방으로 옮겨두고 숨소리조차 낮춰가며 술을 익히셨다.
 밀주금지령으로 감춰놓은 항아리에서 술 익는 냄새가 뽀글뽀글 새나올 때마다 혹여 단속반이 들이닥칠까 봐 엄마는 애간장을 태웠다. 단속반에 들킬까봐 얼굴은 해쓱하고 간이 콩알만 했지 싶다. 갑자기 들이 닥치는 단속반에게 들키기라도 하는 날은 만만찮은 벌금형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가족이 다 모이는 추석날, 조상과 산 사람을 동시에 대접하는 유일한 음식이 밀주였으니 말이다.


 휘영청 보름달이 환하게 떠오른 추석 날 저녁이면 동네 한가운데는 가설무대가 꾸며졌다. 달빛 아래 일찌감치 저녁밥상을 물린 가족들은 손에 손을 잡고 무대 앞으로 모여들었다. 한창 잘 나가는 '남진이나 나훈아, 이미자'보다 더 열창할 '콩쿠르대회'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동네 젊은이 중에 그런대로 노래한다는 이는 다 모여들었다. 가족 중에 노래 잘하는 이가 있는 집은 초저녁부터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있었다. 반짝반짝 진열해둔 상품에 은근히 눈독을 들였던 참가자들은 더 신명 나게 몸을 흔들거나 목청을 돋우며 노래솜씨를 겨루었다. 여름내 힘들었던 농사일에서 벗어나 추석날만이라도 열광하던 콩쿠르는 텔레비전조차 귀했던 시절에 단합된 가족애를 확인하는 유일한 잔치였다.
 내 친구 길순이의 큰언니 '부순'이는 콩쿨대회에 단골 가수였다. '동숙의 노래' '섬마을 선생'을 워낙 간드러지게 부르는 바람에 참가만 했다 하면 노다지 1등을 독차지했다. 상품으로 받은 큼지막한 양은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온 식구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집으로 돌아가던 뒷모습을 얼마나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부순' 언니처럼 노래솜씨로 상을 타고 싶었지만, 우리 가족은 꿀 먹은 이미자 벙어리나, 짝퉁 남진이 조차 흉내 내지 못한 채 침만 삼켰다.


 '부순' 언니의 노래 실력은 결혼을 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어느 해 추석에는 요즈음 잘나가는 '하정우'만큼이나 멋진 신랑과 어린 딸까지 대동하고 나타나 트로트를 메들리로 부르는 바람에 변함없이 대상을 차지했다. 당연히 가족은 스타 취급을 받았고, 잘생긴 신랑의 오리 궁둥이 춤사위는 거의 가관이었다. '부순' 언니의 송편 빚는 솜씨가 특출해서 그리도 멋진 신랑을 얻었을까 몹시 궁금했지만, 여태껏 물어보지 못했다. 
 추석은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앉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지난 이야기로 웃음과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는 삶의 속살들을 다 내보이고도 전혀 부끄럽지가 않았다. 정성어린 음식을 먹으며 소담스럽게 나누는 정겨운 대화, 송편 하나, 밀주 한잔에 추석 명절이 넉넉했다.
 요즈음 같은 현대는 그립고도 먼 이야기가 되었다. 정겹던 옛 시절은 지나고 고향에는 연로한 어른들만 덩그러니 남아 근근이 마을을 지킬 뿐이다. 도시의 젊은 주부들은 명절이 아니라 '노동절'이라며 불평어린 목소리를 더러 흘린다. 안타깝고도 슬픈 일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도 어느새 아들 내외와 손녀를 기다리는 고향 할머니 신세가 되었다. 서울에서 꼬박 예닐곱 시간을 힘들게 달려오는 세 식구가 저녁나절쯤이나 당도한다는 소식에 가슴이 뜀박질이다. 며칠 전부터 김치를 새로 담그고, 각종 나물이며 밑반찬재료를 준비해 김치냉장고에 채워두고 아들 내외와 손녀를 목을 빼고 기다린다. 이게 다 나이 들어가는 증거다 싶다가도, 세상에 핏줄을 만나는 일만치 기분 좋은 일이 없으니 가슴 벅차다.
 내일은 일찌감치 큰댁 질부네로 가서 명절 일을 도울 것이다. 일가친척끼리 혈육의 정분을 나누는 기회는 일 년을 두고 많지 않다. 추석명절만큼이라도 친척들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거나 전을 부치며 서로에게 마음의 '콩쿠르상'을 주는 것도 좋을 성 싶다. 그 간에 힘들었던 일은 서로가 용기의 말로 쓰다듬거나 다독여주는 배려의 손길을 누구든 먼저 내밀어 볼 일이다.
 '가족'이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한가위다. 같이 차례상을 거들고 뒷설거지를 나누어 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행복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집 앞에 서울 가족이 도착했다는 기별이다. 가슴속에 우주만큼이나 커다랗고 환한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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