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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9·11 테러는 많은 사람이 종교 갈등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고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자 종교는 허상이며 종교가 없어지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큰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새로운 무신론자'들이 각광받게 된 것이다.


 윤동철 성결대 조직신학 교수는 신간 '새로운 무신론자들과의 대화'에서 이 새로운 무신론자들에게 반격을 시도한다. 그는 "무신론자로, 9·11테러나 자살폭탄레러 방송을 제작한 도킨스는 애당초 종교를 깊이 연구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오로지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방송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말한다.
 종교의 내적 성격이나 진정성은 도외시하고 부정적으로 보이는 현상들만 수집해 교묘하게 편집하는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도킨스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테러를 주도하는 이슬람 과격단체의 배경에는 강대국의 무력에 의해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역사적 아픔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도킨스의 조국인 영국은 그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했다.
 윤 교수는 팔레스타인 땅을 피로 물들게 한 중동분쟁이 영국의 배신과 이중플레이에서 비롯 됐음을 지적한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오스만제국을 격파하기 위해 아랍 현지인들의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당시 영국의 고등판무관 맥마흔은 1915년 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아랍의 지도자 후세인에게 서한을 보낸다. 오스만제국이 점령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인들이 주축이 된 독립국가를 세우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맥마흔 선언'이다.
 이 서한을 철석같이 믿은 아랍인들은 목숨을 걸고 영국 편에 서서 싸웠고, 영국은 마침내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영국은 아랍인들에게만 이런 약속을 한 게 아니었다.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는 국제 유대인 사회가 영국에 협력하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국가 건설을 약속하겠다는 '밸푸어 선언'을 했다. 훗날 분쟁의 불씨가 되는 모순되는 약속을 남발한 셈이다.
 영국은 1916년에는 프랑스와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라 불리는 비밀협정도 맺었다. 전쟁이 끝나면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지역을 분할 통치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영국은 이라크와 요르단 지역을 통치하고 팔레스타인은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영국은 2차 대전이 끝나자 아랍인과 맺은 맥마흔 선언, 유대인과 맺은 밸푸어 선언을 모두 무시하고 서방국가끼리 맺은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역을 자신의 위임통치 지역으로 만들었다.
 이에 독립을 열망했던 아랍인들의 분노가 들끓었고, 영국은 아랍인들의 반영국-반유대 테러와 습격에 부닥치자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넘겨버린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과 유대인 구역으로 분할한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아랍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대대적인 전쟁을 일으켰다.
 이후 계속되는 중동분쟁의 시작이었다. 이처럼 9·11 테러를 비롯한 수많은 종교 갈등은 역사적, 정치적 이해타산이 맞물려 발생하는 권력 갈등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또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전제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음을 조목조목 밝히고 기독교의 가르침이 어떤 의미와 가능성을 갖는지 설명한다.
 윤 교수는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주장처럼 증명 가능한 것만 믿을 수 있다고 한다면 윤리와 도덕, 자아와 문화 같은 인류의 정신세계는 기반을 잃고 말 것"이라며 "이런 지적에 대해 그들은 만족할 만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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