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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점가에도 시집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란 다소 어렵다는 일반 독자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잘 편집된 시선집부터 본격적인 시의 매력을 음미할 수 있는 시인들의 신작까지. 이 가을 읽을 만한 눈에 띄는 시 분야 신간들을 소개한다.

▲ 순간을 읊조리다
# 순간을 읊조리다 ∥ 김소월 외·세계사
국내 대표 70인의 시인들의 시 중 좋은 문장을 골라 엄선한 신간 '순간을 읊조리다'는 바쁜 현대인들이 틈나는 대로 읽기에도 참 좋은 책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읊조린 강렬한 한 줄의 시와 더불어 그림을 덧붙여 소개했다. 한 문장이 나의 전부를 읽은 것만 같은 전율과 기쁨을 줄 때, 그 한 문장에 이끌려 하나의 시를 읽게 되고, 그 하나의 시 때문에 한 권의 시집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김소월, 윤동주, 문정희, 최승자, 정호승, 허수경, 김행숙, 최영미, 박준, 이이체 등 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시인들의 작품 중 가장 특별한 한 문장을 담았다.
 홀로 울고 난 다음날 출근할 때, 귀갓길에 문득 아파트 계단을 올려다 볼 때, 잘 하려고 노력하는데 왠지 눈물이 날 때, 오늘도 사랑한다고 말 못하고 돌아섰을 때…. 시인들이 평생을 바쳐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문장과 그림은 스쳐 지나가는 삶의 순간을 길어올린다.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한 문장을 만났을 때의 황홀함을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반적인 것과 달라 우리가 늘 접하는 일상도 조금 더 특별하게, 새롭게 보여주곤 한다. 이 책에서는 감각적인 그림 하나와 강렬한 문장 한토막을 잘라내어, 삶의 순간 순간을 '잠깐 멈춰'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더불어 시를 음미하는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다.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 손택수·창작과비평사
손택수(44) 시인이 네 번째 시집을 펴냈다. 전남 담양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서정의 세계를 노래해 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는 지나온 생을 정직하게 되돌아보며 남루해진 삶을 따스한 눈길로 감싸안는다.
 "예전의 독기가 없어 편해 보인다고들 하지만/날카로운 턱선이 목살에 묻혀버린/이 흐리멍덩이 어떤지 쓸쓸하다/(중략) 뒤꿈치 굳은살 같은 날들 먼지 비듬이라도 날리면/온몸이 근질거려 번쩍 공중으로 들어올려지고 싶은 도끼"('녹슨 도끼의 시' 중)


 도시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시인은 삶의 상처도 담담하게 묵상한다. "점심에 김밥 한줄 들고 월드컵공원에 나가 나무 그늘 아래 드는 일/(중략) 그런일, 왜 항상 가장 먼 것은 여기에 있는지/닿을 수 없는 꿈들을 옆에 둔 채 아픈 것인지"('김밥 한줄 들고 월드컵공원 가는 일' 중)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절절하게 쏟아낸다. "평생 시장 지게꾼으로 살다 간 아비/뼈를 묻은 나무 밑동이다/숙이고 숙여,/땅바닥 아래까지 꺼져/마른 등짝을 뚫고 솟아오른 풀잎"('풀잎 지게' 중) "게을러터진 아비의 아들답게/사망신고를 미루고 미루면서/나는 아버지의 유골가루를 품고 다닌다"('바람과 구름의 호적부' 중)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은 '호랑이의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등의 시집을 냈으며 신동엽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임화문학예술상, 노작문학상 등을 받았다. 함민복 시인은 "손택수 시인의 시는 일단 명징해서 좋다"면서 "문제풀이 콤플렉스에라도 걸린 듯 난해함을 섬기는 작금의 유행 시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평했다.
 

▲ 침묵의 결
# 침묵의 결 ∥ 이태수·문학과지성사
이태수(67)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을 냈다. 시집 '침묵의 푸른 이랑' 이후 2년 만이다.
 올해로 시력(詩歷) 40주년을 맞는 시인은 '신성한 말'을 찾아나섰지만 그 언저리에도 이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내 말은 온 길로 되돌아간다/신성한 말은 한결같이/먼 데서 희미하게 빛을 뿌린다/나는 그 말들을 더듬어/오늘도 안간힘으로 길을 나선다/하지만 아무리 애써보아도/그 언저리까지도 이르지 못할 뿐/오로지 침묵이 그 말들을/깊이깊이 감싸 안고 있다"('시법(詩法)' 중)


 시인은 인간의 언어로는 '신성한 언어'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신성한 언어'를 감싸는 침묵과 마주한 그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이 세상의 본질과 자연현상에는 인간의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새로운 깨달음과 만난다. 벚꽃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 속에서 "눈부신 포부라기들"을 만들어 낸다.
 "봄은 정적(靜寂)을 밀려 다시 돌아온다/언 땅을 헤집으며 꼬리 흔드는 버들강아지/(중략) 덮개를 슬며시 밀쳐낸 정적은/산과 들, 거리에서 서둘러 제 길로 되돌아가고"('봄맞이' 중)
 "새들은 마치 이 신성한 광경을/나직한 소리로 예찬이라도 하듯이/벚나무 사이를 날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하지만 이내 온 길로 하나같이/ 다시 되돌아가 버리고 말/저 침묵의 눈부신 보푸라기들"('벚꽃' 중)


 원로 비평가 김주연 전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침묵의 결'은 신과 자연, 자연이 함축하고 있는 언어, 인간의 언어와 비인간의 언어 등 이 세계의 본질과 현상에 대한 많은 문제들을 불러놓는다"고 분석했다.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 '꿈속의 사닥다리' 등의 시집을 냈으며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구예술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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