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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몽베고 산의 한 바위에 주술을 내리는 듯한 사람 형상을 한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지난 15일 찾은 울산암각화박물관. 이 곳에는 '신들의 신성한 거처, 알프스 몽베고 암각화展'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해발 2,900m 몽베고 산봉우리 계곡에 흩어져 있는 암각화는 만년설로 인해 대부분은 눈 속에 묻혀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건 여름철 두 달 남짓밖에 안된다. '몽베고'는 프랑스어로 산이란 뜻의 몽(mont)과 베고(be-go)의 합성어다. be-go의 'be'는 황소 신, 'go'는 대지의 여신 'ge'의 어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메르 신화에서 바람과 비를 관장하는 황소 모습을 한 'Bel'이란 신이 있고 아리안 신화에서도 소는 하늘과 번개, 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유적 이름만으로도 이곳이 지중해와 알프스 지역의 고대신화와 관련된 종교적으로 신성한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작시기는 최근 신석기(BC 6,000∼BC 3,200)설이 우세한 반구대 암각화보다 늦은 청동기시대(BC 3,200∼BC 2,200)부터 1960년대 새겨진 것까지 다양한다.

해발 2,900m에 있던 고대유물 오롯이 재현
1877년 첫 조사후 현재 3만 5,000여점 발견
내년 1월31일까지 울산시민에 무료로 선봬

# 황소·대지의 신 등 선사인들의 정신문화 기록
지난 15일 이곳에서 열린 앙리 드룸니 프랑스 고인류학 연구소 이사장의 특강에서도 유적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세계적인 암각화 권위자인 그는 이날 몽베고 유적의 문양들을 실타래 풀어내듯 자세히 소개했다. 몽베고 암각화에는 비를 관장하고 농경이나 목축 등을 보여주는 황소와 대지의 신, 물을 끌어들이는 관개, 풍년 등을 의미하는 물의 신, 단검 모양 등이 새겨있다.

 이들은 동서양의 신화에서 나타나듯 황소의 신은 남신, 땅의 신은 여신처럼 성별도 구분돼 있다. 재밌는 것은 이것들이 결합해 확장된다는 점이다. 자손이나 풍년을 기원하는 듯한 그림에서는 남신인 '황소의 신'과 여신인 '땅의 신'이 결합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차츰 복잡해져 '엄마'인 땅의 신이 '아들' 황소의 신을 낳고 황소의 신이 또 비를 내려 대지(땅의 여신)를 풍요롭게 하는 등 확장되기도 한다.

대표 문양들을 쉽게 설명하고 있는 전시장 패널.

 또 사람이나 동물을 제물로 삼아 비를 내리게 한 기우제 같은 장면이나, 인간의 행동을 반성하는 장면도 보인다. 고대 선사인들도 다양한 정신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특히 일부 문양은 그리스로마 신화나 수메르 신화 등과 연계돼 풍성한 얘기를 들려준다. 황소의 신이 단검과 연결돼 있는 장면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제우스가 검을 들고 있는 장면과 흡사하다. 또 황소 뿔이 대치하는 그림은 고대 이집트 모옌 제국 시기 벽화 속 황소 싸움을 그린 것과 비슷하다.

 단순히 그림 문양 하나만 연구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시기 전 세계 신화나 시 등 다양한 원전이 함께 연구되다보니 성과도 풍성할 수밖에 없다. 이상목 암각화박물관장은 "몽베고 유적 연구는 관련 연구가 상당히 진척돼 암각화가 들려주는 얘기가 무궁무진하다"며 "국내 암각화 연구에 던지는 시사점도 크다"고 말했다.
 
# 18세기까지 '몽베고는 악마들이 사는 곳' 여겨져
몽베고 암각화를 둘러싼 비화도 있다. 수 천년 전 선사인들은 몽베고에 올라 바위에 그림을 새기고 숭배했지만, 기독교관이 중시된 18세기까지 이곳은 악마들이 사는 곳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15세기 피에르 드 몽포트라는 여행가는 몽베고를 답사하고 '수 천의 악마들이 바위에 기이한 그림을 새긴 참혹한 지옥'이라고 했다. 당시 이곳을 본 사람들의 증언은 하나같이 이곳을 악마의 상징인 소뿔과 뱀, 사람이 절대 살수 없는 참혹한 풍경과 수시로 내리는 우박과 번개 등이 있는 기이한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몽베고 암각화 대표유적인 '족장 바위'. 커다란 사람형상과 소뿔, 사람형상의 조합이 독특하다.
 1786년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을 등정한 미셸 가브리엘 파카르와 자크 발마가 '알프스 정상에 악마가 살고 있지 않았다'라는 말이 큰 방향을 일으켰듯 유럽인들에게 높은 산정을 등반하는 것은 중세적 세계관이 퇴색한 18세기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몽베고 암각화의 발견까지에도 다양한 역사가 있다. 몽베고 암각화는 1877년 프랑스 선사학자 에밀 리비에르가 첫 조사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영국 식물학자 클라렌스 비크넬은 1885년 조사를 시작해 1918년 7월 독버섯 중독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약 1만 2,000 점의 암각화를 채록했다. 

    비크넬 사후 이탈리아 카를로 꽁띠가 가족과 매년 산 위에 조사캠프를 차리고 1927년부터 2차 세계대전 와중인 1942년까지 3만 5,000점의 암각화를 조사했다. 종전 이후 몽베고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영토로 귀속되면서 1967년부터 앙리 드룸니 조사팀에 의해 조사가 진행되다 현재 메이베이유 박물관이 조사를 잇고 있다.
 
# 걸음마 단계인 반구대 암각화 연구에 긍정 영향
이런 부분은 아직은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반구대 암각화를 생각하면 부러운 부분이다. 지역의 한 학자는 반구대암각화 연구가 국내에선 어느정도 이뤄졌지만 세계 학계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했다. 세계 유수의 암각화를 소개하고, 그 연구과정과 이를 보존, 관광 자원화하는 선례를 소개하는 암각화박물관의 작업은 그래서 더 값지다.

 그동안 국내에서 문화재는 급격한 개발의 과정 속에서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울산은 더욱 그랬다. 그러나 주목받고 있는 퓨전사극이나 영화,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이 토대를 역사에 두고 있듯, 분명한 건 과거의 문화유산은 우리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주말 가족들과 박물관을 찾아 이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연중 무휴로 열리며 무료다. 문의 052-229-6678.    글·사진= 김주영기자 uskjy@


■이상목 관장 인터뷰

"세계 암각화 특별전 마련 반구대 암각화 재조명"

울산 암각화박물관은 2009년 '아시아의 진주 알타이 바위그림'전을 시작으로 세계 유수의 암각화를 소개해 오고 있다. 구석기 암각화인 알타미라, 라스코, 쇼베, 마엔시앙스 동굴벽화 등을 2011년에 소개했고, 지난해 사하라 바위그림을 소개했다. 해외 암각화를 소개하는 이유와 6주년을 맞은 지금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해외 유수의 암각화들을 소개하는 이유는?
- 암각화박물관은 매년 선사미술과 암각화을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우리 박물관만이 할 수 있는 주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특화된 특별전을 개최할 생각이다. 타국의 암각화를 소개하는 의미도 있고 박물관 자료, 교류성과가 확보돼 연구역량도 그많큼 높아진다. 이로써 해외 암각화 학술조사에 버금가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 현재까지 성과는?
- 특별전 뿐 아니라 매년 한국암각화 조사도록을 영문으로도 발간해, 관련 국내외박물관, 연구소, 연구자에게 제공한다. 이미 해외의 많은 논문에서 우리 자료를 활용할 정도로 위상을 다져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교류하는 곳은 프랑스, 벨기에, 포르투갈, 영국, 스페인, 노르웨이,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이다. 규모는 작지만 연구 역량만큼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 이번 특별전 취지는?
- 몽베고 암각화는 19세기부터 조사와 연구가 시작된 곳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최초로 발견된(1879)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위작 시비로 1902년이 돼서야 인정받게 됐고, 이후 연구도 시작됐다. 하지만 몽베고는 1855년부터 조사연구가 시작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암각화 조사기술과 방법, 연구에서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국내 암각화 연구도 몽베고에서 배울 점이 많다. 지중해 지역 고대신화, 암각화에서 문자로 변화하는 과정, 종교 성지로서 암각화가 그려진 공간의 의미 등 많은 연구성과가 그렇다. 또 몽베고 암각화는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도 빠져들게하는 매력이 있다. 이 유적이 소개되면 자연스럽게 반구대, 천전리암각화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것이란 기획의도도 있다.
 
△ 몽베고 암각화의 특징은?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감상하면 좋을지?
- 몽베고는 우리 민족에게 백두산의 의미처럼 지중해와 알프스 고대인들에게 성소로 여겨져 왔다. 그속에 그려진 그림들은 신을 표현하거나 신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다. 많은 연구를 통해 그림의 의미를 관람객 스스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유물 뿐 아니라 사진이나 쉽게 풀어 쓴 해설문, 영상, 마감하지 않은 나무벽체 등 특별전을 관람하면 마치 알프스 몽베고를 직접 여행한 것 같은 감동을 느끼도록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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