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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우 전 울산시장은 퇴임을 앞두고 몇가지 중요한 정책 결정을 했다. 농수산물도매시장 이전과 시립도서관 건립 부지 확정, 문수축구경기장 유스호스텔 건립 등이다. 김기현 시장이 민선 6기로 출범하면서 이들 현안에 대한 논란이 점화됐다. 전임 시장이 결정한 사안을 두고 후임 시장이 손을 데는 문제는 예민하다. 그래서 장고를 거듭했다. 그 결과가 지난주 나왔다. 시는 입지 선정 논란이 있는 농수산물도매시장은 이전을 보류하고, 시립도서관 입지 문제는 2009년부터 14개 부지를 대상으로 선정이 추진됐고, 중앙투융자 심사와 현상설계 공모가 진행된 점으로 미뤄 입지의 원점 재검토는 불가하다고 밝혔다. 문수축구경기장 유스호스텔 리모델링 사업의 경우 이미 설계까지 마쳤지만 수익성이 없어 사실상 폐기하기로 했다.

결국 농수산물시장과 문수경기장 리모델링은 원점으로 돌렸고 시립도서관은 그대로 간다는 이야기다. 언뜻 보면 세가지 모두 원점회귀하고 싶지만 전임시장의 결정을 모두 폐기처분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어 하나는 그대로 강행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철저하게 여론의 동향과 수익성이라는 경제논리에 기준점을 둔 결정이라고 여겨진다. 문수경기장 리모델링 사업은 사실상 출발부터 잘못됐다. 시민들의 성금으로 만든 스탠드를 뜯어내고 그 위에 유스호스텔을 짓겠다는 발상은 일견 신선하다. 문제는 도쿄나 뉴욕, 파리처럼 도시의 면적은 한정돼 있고 유스호스텔의 필요성이 대두된다면 고려할 사항이다. 울산은 그렇지 않다. 굳이 스탠드를 무용지물화하면서 유스호스텔을 짓겟다는 것은 신선함이 아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니 폐기하겠다고 했을 때 그동안 들인 사업비의 손실을 알면서도 대다수 시민들은 김기현 시장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농수산물 시장과 시립도서관 문제는 다르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이전과 시설 현대화는 절차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진행한 공개적 공론화과정에 의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돌연 입장을 바꾼 결정이다. 왜 재검토 해야하고 어떤 결정이 잘못됐는지 분명하게 따져야 할 대목이다. 시립도서관은 그 반대의 경우다. 시립도서관 입지를 두고 어떤 공개적인 공청회가 있었는지, 어떤 여론 수렴과정이 있었는지 시민들은 모른다. 그럼에도 예산이 어떻고 중앙투자 심사가 어떻고 하면서 강행의지를 보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정이다. 그래도 몇 달간의 논의와 숙고를 통해 결정했다고 하니 이제 입 다물고 제대로 된 도서관하나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 되는 것인지 선뜻 고개가 움직이지 않는다.

기왕에 시작한 전임시장의 졸속 결정에 대한 진단이라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여론 수렴을 거쳐야 마땅하다. 한번 결정하면 움직일 수 없는 말뚝박기가 된다. 이미 시의회에서도 재론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예산이 더 들고 기존 투입 예산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시립도서관이 들어서고 나서 시민들로부터 외면받는 시설이 된다면 이미 결정한 박맹우 전임 시장은 물론 현 시장까지 건립의 주역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울산은 부끄럽지만 부자도시이긴 해도 행복한 도시는 아니다. 오히려 울산을 잘 모르고 설핏 스치듯 다녀간 이들은 울산을 두고 천박한 도시라고까지 폄하한다. 이유는 뭘까.

울산이 산업수도를 지향점으로 개발과 성장에 몰두한 이래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끌어 온 주역이 됐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일이 됐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도성장의 그늘에 눌린 교육과 문화, 도시의 정체성은 언제나 해결해야 할 과제로 울산의 아킬레스건이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중구가 구도심을 살리기 위해 대형 유통업체 유치에 사활을 걸지 않고 문화로 옷을 입힌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인근 김해가 미술관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부산시가 시민들의 여론을 모아 시민공원에 시립도서관을 재건립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한도시의 미래는 시립도서관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는 도서관이 바로 그 도시의 인문정보의 보고이자 상상력의 인큐베이터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한쪽 끝 작은 공간에 있지만 우주와 교감하는 곳이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도시의 품격을 더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과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아주 오래전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고 문화를 빗질하던 시기부터 행복을 만드는 공간으로 자리해 왔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 제일 먼저 찾는 곳은 그 도시의 박물관과 대학, 도서관 등이 우선순위가 된다. 물론 유명한 관광지도 빠지지 않고 들리게 되지만 제대로 갖춰진 박물관이나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라면 그 도시의 이미지를 연상할 때 박물관과 도서관을 제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관광을 위해 울산을 찾는 사람들이 태화강을 보고 공단의 시설을 살핀 뒤, 질 좋은 불고기나 고래고기 몇 점으로 입을 즐겁게 했다고 울산을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산업의 메카로 기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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