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 저 간악한 일제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정든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슬프고 원통하도다. 정든 산하를 떠나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북간도로 떠나는 이 기막힌 사연들을 그 누가 알 것인가? 내 고향 울산의 태화강과 함월산이 통곡을 하는구나. 고향땅 한 줌 흙을 봇짐에 넣어 타향으로 떠나는 그대들을 두고 동천강도 울고 무룡산도 눈물을 흘리는구나. 아!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 기막힌 사연을 그 누가 알아 줄 것인가? 그 비극의 사랑이야기는 계비고개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었다. (징소리)"

 얼마전 막을 내린 울산 연극협회 합동공연 악극 '계비고개' 의 첫 대사다. 이 구수하고 정감어린 대사의 주인공은 최주봉 변사다. 3·1운동이 4월6일 울산 병영까지 내려와 도화선이 되었던 병영의 옛말 '계비고개'는 이렇게 막을 연다. 7년전 '타향살이' 로 첫 막을 올린 이후 지금껏 매년 울산 연극협회 합동 공연으로 막을 올려 왔던 작품이다. 더구나 울산을 소재로 한 대표 레파토리 연극으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 온 작품이다. 올해는 4년만에 작가이자 연출인 박용하씨가 직접 연출을 맡았다. 더구나 울산시립무용단의 춤과 정상수 악단의 연주와 노래는 이번 공연에서도 빠질 수 없는 꽃이었다. 오랜 역사를 지니며 사랑받는 국민 대중가요라 할 수 있는 타향살이에서 부터 열아홉 순정, 봄날은 간다, 독립군가, 짝사랑, 애수의 소야곡, 여자의 일생 등 일제 이후 세대의 가슴을 울리고 쓸어안아 주었던 주옥같은 노래들이 장면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춤과 함께 불려 질때마다 관객들은 따라 흥얼거리며 옛추억들을 되뇌었다.

 장면마다의 극적 성향을 고복수와 황금심의 옛노래들로 접목시킨 연출 의도는 옛향수를 자극하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것에 손색이 없었다. 더구나 악극이 지닌 특성상 정통 멜로 드라마의 연기법들을 울산에서 오랜 세월 터를 잡고 활동해온 40대의 기성 배우들이 출연해 기량껏 연기해냄으로써 더없이 조화로운 무대로 채워 나갔다. 그야말로 악극 '계비고개'는 울산을 소재로한 희곡에 작가와 연출의 창작극에 울산 연극계에서 오래 활동해 온 울산 연극협회의 연극인들에 울산 시립 무용단의 춤에 울산 연예협회의 악단 연주와 노래에 이르기까지 울산인들이 하나로 힘을 모아 만든 울산 토종 악극인 것이다. 배우들의 역량도 대극장에서 거침없이 토해내며 대한민국 연극제때마다 큰 상을 거머쥐고 왔었던 만큼의 연기력을 한껏 뽐냈다. 특히나 비련의 여주인공역을 맡았던 배우 허은영(극중 은이 역)의 연기는 중년이 훌쩍 넘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끝내 적시게 하고야 말았다.

 악극 '계비고개'는 지난 일제 치하의 비극상들인 침략과 핍박과 정신대 사건 등이 은이와 용우 청춘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의 과정과도 오버랩 되어 있다. 이 비극적인 역사의 알레고리를 악극 '계비고개'는 울산을 소재로 극구성해 새롭게 선 보였다. 유독 우리나라와 일본의 과거사는 속 시원히 풀리지 않은 채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풀어지지 않고 묶여있는 채로는 서로에게 불행했던 과거사는 끊임없이 회자되며 불유쾌한 관계를 지속할 뿐임이 안타깝다. 극중 독립군 역할로 특별 출연한 울산 출신의 정갑윤 국회 부의장과 이성룡 울산 시의원의 깜짝 출연이 극 흐름을 다소 방해하는 듯 했다. 하지만 1500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배우들이 미리 나눠 준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 독립 만세를 함께 외쳤다. 울산 출신들이 만들어 낸 토종 악극인 만큼 관객들이 함께 즐기는 것을 보았다.

 내년에는 대한민국 연극제가 울산에서 개최된다. 울산광역시 승격 1997년 이후 20여년 가까이 아직도 울산 시립 극단만 없다는 것이 참 어처구니없고 창피한 일이다. 울산을 소재로한 토종 연극과 울산 연극인들이 만들어 낸 계비고개 공연을 봤던 관객이라면 울산 시립 극단의 창단에 응원을 보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10월은 지역 축제를 시작으로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울산 시민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즐기는 축제의 계절이 되길 소망한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