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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라는 말은 주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을 폄하하는 말로 인식하고 있다. 대중음악인 스스로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과연 그럴까. 티베트 밀교에서 '탄트라'는 고도의 수행체계를 거친 다음 단계의 수행체계로 온갖 악기를 동원한 의식이 요란하고 웅장하게 벌이는 교육을 말한다. 딴따라는 탄트라의 음역으로 인식한다면 자부심과 자긍심이 생길 것이다.

 '앵벌이'는 불량배의 사주를 받아 어린아이가 구걸이나 도둑질 따위로 돈벌이를 하는 짓을 말한다. 이 때 '앵'은 무슨 의미이며 어떤 글자를 쓸까. 실례를 살펴보면, '앵미(惡米)는 적미(赤米)이지 결코 빛이 붉고 질이 낮은 쌀'이 아니다. 혹은 '떳떳하게 벌어야지 앵벌이 하면 되겠나' 등이 있다. 앵미에서 앵과 앵벌이에서 앵은 둘 다 같은 의미로 쓴다. 악(惡)의 본래 말이 '앵'이다. 한때 몰라서 잡초성 벼로 인식한 적미가 귀한 앵미이다. 직업도 없이 지나치게 꾀꼬리 같이 노래하고 나비같이 춤추는 것을 비유한 '앵가접무(鶯歌蝶舞)'에서 앵은 꾀꼬리이다.

 '청상과부(靑裳寡婦)'는 푸른 치마와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여인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왜 남편 잃고 혼자 사는 여성을 청상과부라 말할까. 옛부터 결혼한 여성은 푸른 치마를 입고 시집가지 않은 처녀는 붉은 치마를 입은 데서 기인한다. '동가홍상(同價紅裳)'이나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청상의 반대개념에서 비롯된다. 왜 같은 값이면 붉은 치마일까. 같은 값이면 이라는 말속에는 푸른 치마를 생략하고 있다. 같은 값이면 푸른 치마보다 붉은 치마를 선택하겠다는 말이다. 확장해보면, 예부터 처녀의 상징인 붉은 치마(紅裳處女)와 과부 혹은 기녀의 상징인 푸른 치마(靑裳寡婦)에서 비롯되었다 하겠다. 이러한 맥락에서 태평무 의상은 처녀라면 붉은 치마를 겉에 입고 안에는 푸른 치마를 입어야 하며 결혼한 여성이라면 반대로 입는 것이 합당하다하겠다. 스님들의 법명이 수행의 지향점이며 별명은 그 수행의 궤적이듯 명칭에는 정체성이 담겨져 있음을 알아야한다.

 '돼지머리'는 고사 상에 흔하게 보이는 제수지만 용을 대상으로 하는 고사의 경우는 생각하고 제수로 사용해야한다. 가뭄이 들어 비를 내리게 하는 의식인 기우제때는 반드시 올려야하지만 너무 오래 비가 와서 그치게 하는 기청제나 혹은 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는 풍어제에는 반드시 삼가야한다. 왜냐하면 용과 돼지는 근본적으로 미워하는 원진살이 있기 때문이다. 양산 '가야진용신제'에 통돼지를 던지는 것은 기우제가 아닌 용신제이기에 당연히 통돼지 침돈의식은 부당하다하겠다. 백마로 용을 낚은 설화에서 용이 좋아하는 음식을 알 수 있다.

 '조갈'은 현시대와 같이 한우의 인공수정이 흔하지 않을 때 이야기다. 이른 아침 농부는 암소를 몰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 '이른 아침에 소 몰고 어디가십니까'하고 물으면 '며칠 전부터 암소가 상내를 내서 조갈 부치러가네'라고 대답한다. 이때 '상내'와 '조갈'은 무슨 의미일까. 상내는 '샅내음'으로 발정의 호르몬 냄새로 이해된다. 조갈은 '교미'로 어림짐작한다. 그런데 장담 못하겠다. 궁금하여 80대 이상 소를 키운 경험이 있는 남성 15명에게 여쭈어보았다. 객관적으로 자신 있게 의미를 말하는 분은 단 한분도 없었다. 다만 윗대부터 그렇게 말하니까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라는 것이며 오히려 용어에 대한 흥미를 보였다. <수능엄경〉의 5위 태중을 마중물하면 첫째 위치인 갈라람(褐羅藍)으로 추측된다. 갈라람은 수태시키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한편 두부를 조포(租包) 혹은 조피라 부른다. 콩물에 간수를 넣으면 서서히 엉킨다. 이렇게 엉키는 현상을 조포(造泡)라 말한다. 선인들은 상당한 지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금기어 '호양×'은 여성을 호되게 욕할 때 쓰는 말이다. 호양과 비슷한 '호작질'은 무엇이던 '만들기를 좋아하는 버릇'이 되겠다. '호양녀(好陽女)'를 호작질에서 마중물하면 양을 좋아하는 여자, 즉 남자를 밝히는 여자 옹녀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還鄕女)라 부른다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봉 잡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봉춤' 출 때 사용하는 봉을 잡았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봉황새를 잡았다는 이야기인가. 뜻밖의 혹은 예상한 행운 등 주로 좋은 것을 획득했을 때 봉 잡았다는 표현을 한다. 부엉이와 연관시켜보면 쉽게 이해된다. 부엉이 혹은 수리부엉이는 새끼가 식욕이 왕성할 때는 토끼, 꿩 등 먹이 감을 수시로 잡아 둥우리로 가져간다. 마을 사람들은 부엉이 둥우리를 발견하면 부엉이가 잡은 짐승을 손쉽게 얻을 수 있어 "봉 잡았다"라는 말을 한다. 며느리를 들이고나 서서히 살림이 풍족해지면 이웃에서 "부엉이 며느리 얻었네"라고 덕담하는 이유도 재물이 모이기 때문이다.

 '괘심하다'할 때 괘심은 마음에 두고 잊지 아니함을 일컫는 한자어 '괘심(掛心)'이다. 괘불(掛佛), 괘념(掛念), 괘의(掛意), 괘의(掛衣)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이 한데 모여서 '조잘거리다'는 것은 새의 울음소리인 '조자' 가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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