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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남쪽 낮은 곳에서 서서히 부풀어 오르고, 가을은 북쪽 높은 곳에서 쓸쓸히 쏟아져 내려온다. 나무들이 제 몸을 도려내는 아픔 끝에 피워내는 찬란한 아름다움.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숭고한 삶의 섭리. 온 산을 불타듯 피워 오르는 단풍은 그렇게 화들짝 와서 서둘러 마감하는 시간이 짧아 더 매혹적이다. 오는 25일 열릴 태화강 100리 걷기대회를 앞두고 그 유혹의 빛깔을 미리 찾았다.

탁골에는 이중 삼중의 작은 폭포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까지 더해져 계곡 트레킹의 깊은 맛을 선사한다.

저수지 계곡 들판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
나무데크·징검다리로 걷기에 무리 없어
산세 따라 굽이마다 그림같은 풍경 연속
고운 단풍·하늘 어우러진 탄성의 2시간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했다. 가벼운 발걸음이 풍경에 취해 자꾸 느려졌다. 느린 걸음은 시간을 담보하지만,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안겨준다. 바람의 속살거림, 새들의 지저귐, 생의 은유처럼 부서져 나뭇잎들 그 속에 느끼는 가을 숲의 정취. 어느 하나 쉬이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태화강의 시작을 찾아가는 길목은 깊숙하다. 세상의 많은 길이 포개지고 좁아지고 한줄기 길만 남았다. 조용하고 맑은 길은 여유롭다. 쫓기듯 살아온 시간이 여기선 저 멀리 뒤처진다. 찬바람이 맑게 스민다. 골짜기 지난 물소리 융성하다. 숨이 절로 깊어진다. 몸의 세포들이 먼저 알고 깨어나 폐부 깊숙이 신선한 공기를 가득 채운다. 우렁찬 나무들이 감싸 안은 길. 흙길은 부드럽고 포근하다.
 
# 아미산 능선 신우목장서 출발
울주군 두서면 전읍리와 미호리를 품은 아미산 능선에 드넓게 자리 잡은 신우목장이 오늘의 출발지다. 발아래 뚜덕뱅이들과 미호앞들이 펼쳐진다. 멀리 경주로 가는 국도와 경부고속도로가 바쁜 삶의 궤적처럼 직선으로 내달리고 여물어가는 가을 들녘이 황금빛 만찬 준비에 한창이다. 여름 한 철 뜨거웠던 격정의 시간을 이겨낸 결실이다.

 상동마을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아 복안저수지로 올라선다. 마을 곳곳 축산농가에서는 가축 전염병 파동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표지판이 문패처럼 달려 있다. 복안저수지는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한 태화강 물줄기가 처음으로 모여 숨을 고르는 곳이다. 둑 꼭대기에 태화강 100리길 이정표가 서 있고, 백로에게 먹이를 주는 트릭아트가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저수지 둘레 길은 시멘트로 포장돼 가지런하고 걷기에 무리가 없다. 산의 형세를 따라 굽이마다 지루함을 덜어준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 아래 이름 모를 풀꽃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한들거린다.
 
# 가을빛 청량한 계곡을 따라 걷는 길
저수지 끝 다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탁골이다. 계곡에는 최근 잦은 비로 숲은 물 흐르는 소리로 가득하다. 물소리와 함께 걷는 길은 계곡 트래킹의 맛을 선사한다. 사람의 길은 물길과 어울려 산을 오른다. 물이 깊어지면 계곡을 건너고 산이 높아지면 능선을 오른다. 도토리나무가 풍성한 결실을 땅에다 뿌렸다. 앙증맞은 다람쥐라도 나타나 오물오물 거리면 금상첨화겠다.

 험한 곳마다 나무데크로 길을 만들어 걸음은 쉽고 물길을 건너는 곳엔 징검다리를 놓아 태화강 100리의 시작, 탑골을 향한 걸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계곡 곳곳에는 인근 산의 작은 물줄기들이 합쳐지고 더해져 시선을 잡는다. 겹겹이 포개지고 떨어지는 이중 삼중의 작은 폭포와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까지 더해져 깊은 산 속의 풍광이나 다름없다. 비 온 후 며칠 뒤의 걸음이 한층 더 눈요기를 선사해줄 듯하다.
 
# 영남알프스 둘레길과 만나다
1시간여 숲길을 벗어나면 갈밤미기골로 연결된다. 계곡은 이제 탑골로 이어져 백운산 중턱 탑골샘을 향할 것이다. 멀어지는 계곡을 왼편에 두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르면 태화강 100리길 이정표를 만난다. 왼편으로 탑골샘, 오른편 내와마을로 이어진다.

 마을 길에서 만난 영남알프스 둘레길 이정표. 길은 이렇게 경계 없이 서로 이어주며 산과 강을 잇고 강과 사람을 잇는다. 내와마을은 예전 기와를 굽던 곳으로 해발 400m의 고지로  경주 최씨와 오씨가 300여 년 전부터 거주해 왔으나 현재는 안동권씨가 정착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내와혹돌이 유명해 전국적으로 수석인이 많이 찾는 곳으로도 이름나있다.

 마을에서의 길은 편안하지만, 가끔 지루하다. 소박한 농촌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큰고개를 넘어서면 외와마을이 발아래 펼쳐진다. 마을에서 제일 큰 건물인 울산학생교육원 내와수련장이 오늘의 목적지다. 외와마을은 금, 은, 동 등 희귀광물이 많이 난 곳으로 지금도 그때의 채광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서말지 무쇠솥과 쇠를 녹였던 도가니, 바람을 불어낸 풀무 등이 잔무골에 남아 있다. 1969년 납석광산이 개발돼 현재도 채광하고 있다.
 
# 6㎞ 남짓 태화강 100리길 4구간
2시간여 시간에 기대어 온 걸음이 끝이 났다. 태화강 100리길 4구간 중 신우목장에서 외와마을까지 6㎞ 남짓이다. 견고한 일상을 벗어난 작은 걸음이 주는 큰 감동이다. 숲과 계곡이 주는 신선한 질감, 하늘과 단풍의 색이 어울린 깊은 탄성의 시간이다. 거기에 울산의 강, 그 시작을 찾아가는 의미를 더한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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