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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 사내하도급 근로자가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집단소송'에서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현대차 정규직으로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2년여만에 특별협의 합의안 도출로 해결의 출구가 보였던 사내하도급 문제를 안개정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직서열 물류운영방식 자동차 생산공정 특수성 배제
외부 부품회사 도급 2차업체 근로자까지 모두 인정
   현장조직·반장·동호회 등 "2심서 현명한 판단 촉구"
조선·철강등 사내하도급 많은 산업계 후폭풍 예고

# 공장안에서 근무하면 누구나
현대차를 비롯한 많은 여론은 1심 판결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적법도급으로 생각했던 부분까지 불법으로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차 안에서 작업할 경우 누구나 불법파견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즉 컨베이어시스템에 직접 관련되지 않은 간접생산공정에서 근무하는 협력업체 근로자까지 현대차 직원으로 판단했을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공정마저 불법파견으로 보았다.
 특히 가장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외부부품사로부터 도급 받은 2차 업체 근로자까지도 '현대차 공장 내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현대차가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과거 사내하도급업체에서 2년미만 근무하고 해고된 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적법 해고로 판결이 난 자, 업체에서 일하다가 당연 퇴직한 자 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내부에서는 이번 판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 일부에서는 판결의 문제점까지 지적하고 나섰다.  현대차 정규직노조 대의원조차 얼마 전 가진 간담회에서 "1심 판결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또한 일부 현장조직이 "현대차 공장 환경을 완전히 무시하고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판결"이라며 강한 이의를 제기하는가 하면, 현대차 울산공장 반장 830여명을 대표하는 반우회는"현장 개개인의 작업내용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내린 판결인지 의문스럽다"며 "현장 혼란이 없도록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재차 촉구한다"는 대자보를 게시하기도 했다.

 아울러 울산공장 전체 동호회를 대표하는 연합동호회는 "잘못된 판결은 현대차 구성원 전체의 고용문제와 직결된다"며 "현대차 라인운영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마치 전체 협력업체 직원 모두가 정규직이라면 이후 현대차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는 대자보를 내는 등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은 전세계 자동차 제조업에서 널리 활용되는 '직서열' 물류 운영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최소한의 자동차 생산방식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2차 도급업체 근로자까지 현대차 정규직으로 간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비정규직노조,  즉각 전환 요구
이와는 달리 1심 판결에서 승소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법원 판결이 난만큼 모든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즉각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함께조직화 사업을 통해 향후 투쟁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지회가 추진 중인 조직화 사업이 순탄하지는 않다.

 신규 조합원 모집에 가입서를 제출한 인원이 불과 수십명에 불과해 비정규직지회의 세 확장이 기대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비정규직지회가 목표로 삼고 있는 생산타격을 위한 투쟁 동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규 조합원 가입이 저조한 것은 "섣불리 나서지 말고 지켜보자"는 정서가 현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차 노사 모두 현장혼란 확산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며 주시하고 있다. 현대차는 물론 지부도"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면 결과를 당연히 존중하고 이행할 것이며, 소송참여 여부 및 조합원 여부와 관계없이 전체 인원에 대해 차별 없이 결과를 준용할 것"이라고 밝힌 점은 이러한 현장 동요를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된다.

 조직화 사업 완료 후 비정규직지회가 투쟁을 하더라도 현대차에 재산상 손해를 입힌 부분에 대해서는 집단소송 1심 판결과 상관없이 민형사상 책임을 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울산1공장 CTS 공정 불법점거를 비롯한 사내하도급 민형사 소송에 대한 최근 일련의 판결은 이를 뒷받침한다.
 노동전문가들은 "괜히 불법투쟁에 연루되어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 등  민형사책임을 질 경우 집단소송에서 이긴 들 돌아오는 실익이 없다"며,"현대차 노사가 소송제기여부나 조합원 여부와 상관없이 최종 판결을 동일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조용히 소송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고 주문한다.
 
# 산업계에 사형선고나 다름없어
무엇보다 이번 판결이 미칠 가장 큰 파장은 산업계 경쟁력 저하다. 이번 판결은 다른 제조업 대비 사내하도급 활용 비율이 낮은 수준인 자동차산업(16.3%)을 넘어서 전 산업계에 사형선고를 내린 셈이다.
 조선(61.3%), 철강(43.7%), 화학(28.8%), 전기/전자(14.1%) 등 주력 제조업종을 응급상황으로 몰아 넣었다. 자동차와 조선업이 주력 산업인 울산경제로서는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서비스업계까지 확산될 우려를 낳고 있다. 통신업계도 사내하청 노조가 설립되어 원청을 상대로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 중이며, 조만간 유사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번 현대차 집단소송 1심 판결의 영향력은 비단 현대차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산업계에 심각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분석된다. 
 김지혁기자usk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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