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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자비심으로 재물이나 불법을 베푸는 일을 보시라고 한다. 험한 세상 내가 이렇게나마 온전히 살아가는 것은 그 누구의 보시 덕분이지도 모른다. 요즈음같이 먹을거리가 풍성한 가을에는 그런 생각이 더 하다.

 내가 농사를 짓고 있는 텃밭의 감나무에서 올해도 단감을 수월찮게 땄다. 아삭아삭 달콤한 감 맛에 나무를 향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옹골차게 달고 있던 열매를 전부 나한테 보시한 감나무가 마른 잎마저 죄다 떨어뜨리고 회갈색의 알몸으로만 서 있는 것이 마치 순교자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다.

 텃밭에 감나무가 두 그루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실제 땅 주인은 타지에 있어서 내가 공짜로 감을 따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중의 행운이다. 수년 전에 도시의 투자자가 사 둔 땅인데 정작 소출을 얻고 즐거움을 누리는 쪽은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되었다.

 만약에 이 땅이 문서상 내 것이었다면 지금처럼 농사를 기분좋게 지을 수 있을까를 가정하면 고개가 좌우로 흔들린다. 감히 나는 그럴 위인이 못 된다. 목돈을 들인 만큼 소득을 얻지 못한 것에 애가 탈 것이고, 땅값이 오르지 않은 것에 분통이 터져 어지간한 소출은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잖은가. 공짜로 누리는 재미에 알타리 무 한 단, 배추 몇 포기, 상추 한 줌이 고맙기만 하다. 거기다 가을이면 달콤한 감 맛까지 즐기니 다시없는 보시를 받고 있는 거다.

 밭 흙에는 소출을 생각해 수시로 깻묵과 거름으로 공을 들이지만, 감나무에는 단 한 번도 사례 거름이나 영양제를 준 적이 없었다. 대충 건성으로 지나치다가 감이 익는 가을철에만 약삭빠른 고양이가 되어 주변을 알짱거리며 수확하는 것이 전부였다. 감나무에 거름을 하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실컷 공을 들였다가 불시에 땅 주인이 나타나 '내 것이오'라고 행세라도 한다면 그날로 비켜 주어야 할 것을 미리 염두에 둔 심산이었다.

 텃밭 농사를 지은 지 올해로 십 년을 훌쩍 넘겼다. 올 가을에도 고추며 호박 고구마, 대파와 도라지를 그런대로 거두었다. 고추와 고구마를 수확한 것을 서울사돈과 아들에게 택배로 부치며 흙이 주는 풍요를 실컷 누렸다. 아마 돈으로 환산해도 만만찮을 액수다.

 처음 밭농사를 수확했을 적에는 요즈음과 달랐다. 밭주인을 고맙게 생각한 나머지 고구마며 단감을 수확한 날은 그중 상품만을 골라 택배로 부치면서 전화기에다 대고 고마움의 절을 몇 번이나 했다. 허나, 해를 거듭할수록 그 마음이 줄어들어 최근에는 아예 가시고 말았다. 사람 마음만큼 간사한 동물도 없다 싶다.

 가지 끝에 달린 까치밥 서너 개만 남겨둔 채 올해 수확도 마쳤다. 마대 자루로 한가득 담은 감은 개미가 쌀 한 톨을 힘겹게 등에 지고 나르는 시늉으로 집까지 끙끙대며 날랐다. 텅 빈 감나무에는 '이제 나는 너에게서 더 얻을 것이 없으니 그만이다.'라는 식으로 줄 것을 다 준 사람에게 더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알고 가차 없이 내팽개쳤으니 도둑놈의 심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감나무에게 나는 이방인이다. 하지만 나무는 진짜 땅 주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았다. 사람처럼 노골적이지도 않고 이것저것 따지는 옹졸함도 없다.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키고 섰다가 달콤한 열매의 풍요로움을 보시했었다. 나름으로 햇빛이나 바람, 물과 영양분을 얻으려 애썼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처럼 요란을 떠는 법이 없었다. 묵묵히 자연의 순리에 따를 뿐, 때가 되면 가지마다 열매를 달아주었다. 가을이면 돌려주고 다시 봄을 기다렸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것, 지혜와 보시행을 가르쳤다. 일일이 따져 가며 대가를 치르는 인간사와는 격이 다른 가르침이었다. '감나무 보살'이었다.

 가을의 끝자락이라 바람이 차다. 회갈색의 맨몸으로 바람을 맞는 감나무를 바라본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내주고도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는 부모의 그것이요 삶에 대한 겸허함을 가르치는 순교자의 모습이다. 어쩌면 세상 만물의 이치는 다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감나무의 수령은 오래되었다. 노쇠해서 열매를 달지 못하는 가장귀도 있다. 내가 감을 따 먹은 지가 십여 년이 지났고 그 전부터 감 밭이었으니 어림잡아 사람으로 치면 나와 연배가 비슷하지 싶다. 아직은 묵묵히 제 소임을 다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그도 힘이 부칠 때가 있으리라 싶으니 동병상련의 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해마다 감나무는 충실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이방인에게 조건 없이 단감을 몇 접씩이나 보시했다. 받는 것에만 몸이 익숙해서인지 겸연쩍던 마음은 간데 없고 당당함이 몸에 밴 나다. 몇 해 전만 해도 옆집 재현이네와 새벽에 우유를 배달해 주는 새댁한테는 나누었었는데, 올해부터는 김치냉장고에 넣어 오래도록 먹을 계산부터 앞세운다. 욕심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감나무에 비하면 나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속물이다. 올해는 땅 주인에게  고마움의 표시라도 해야겠다. 감 자루를 베란다로 옮기다가 내친김에 수화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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