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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지역의 철새인 흰정수리북미멧새는 7일 동안 잠을 안 자면서 '밤낮 없이' 일한다. 수천 ㎞에 달하는 북미 서부의 대륙붕 상공을 이동하는 내내 낮에는 먹이를 찾고 밤에는 비행을 한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5년간 이 새를 연구하는 데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7일간 잠을 자지 않고 작전을 수행하는 '불면 병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국방첨단연구기획국(DARPA) 주도로 많은 과학자가 신경화학물질, 유전자치료, 경두개자기자극법을 포함한 불면 기술을 실험 중이다. 실험이 성공하면 성과는 군사 영역을 넘어 곧바로 민간으로 퍼져나갈 게 불보듯 뻔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잠을 안 자면서 작업을 수행하거나 소비하는 '불면 노동자' '불면 소비자'가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인 저자는 신간 '24/7 잠의 종말'에서 이미 잠의 종말 단계에 들어섰다고 우려한다. 하루 24시간, 주 7일 내내 쉼없이 돌아가는 산업과 소비의 시대가 펼쳐져 있다는 얘기다. 정보통신 기술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업무를 보고,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한다. 잠과 휴식은 불필요한게 됐을 뿐 아니라 체제의 안정과 영속을 좀먹는 이단으로 치부된다.
 책은 그 속에서 더욱 심화된 인간소외 현상을 꼬집는다. 시간성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주체성과 능동성을 상실해 무력함에 빠지고 24/7 체제는 이런 상태를 지속하려고 통제와 감시, 규제로 나아간다.
 미 공군의 정보수집 체계인 '고르곤 응시 작전'은 24/7 체제에 충실하게 표적을 주시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고르곤 응시'로 수집한 정보를 활용한 무인기 공격, 야간 스텔스 헬기 기습으로 현지인들의 밤 시간을 의도적으로 망쳐버렸다. 현지 부족 공동체의 잠과 회복의 사이클을 헝클어버림으로써 언제 어디서든 감시당하고 있어서 도피가 불가능하다는 영구적 공포 상태로 몰아넣었다.
 24/7 체제에서 잠은 왜곡되고 변질된다. 더 이상 자연적인 잠이 아니다. 그저 생리적 필요에 의해 가변적으로 '관리'되는 기능으로 전락했다.


 2010년 통계를 보면 5,0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수면제를 처방받거나 구입했다. 돈을 치르고 사는 것은 진짜 잠이 아니라 잠과 유사한 상태에 이르게 화학적으로 조절된 생리현상이다. 이렇게 만연한 수면제 사용은 제약산업의 확대를 돕는 결과를 가져온다.
 현대인들은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모바일 기기에 들어온 메시지와 정보를 확인한다. 완전한 수면이 아니라 '절전 대기 상태'에 있다가 다시 정보통신의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잠이 비록 설 자리는 잃어도 결코 완전히 소멸될 수는 없다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깊은 잠의 무감각 상태에 대한, 밤마다 찾아오는 희망은 동시에 예기치 않은 어떤 것을 담고 있을 수도 있는 깨어남에 대한 기대다. 이제는 사실상 단 하나의 꿈만 존재하며 그것이 다른 모든 꿈을 지양하는 바, 그것은 운명이 다하지 않은 공유된 세계, 억만장자가 없는 세계, 야만이나 포스트휴먼한 것과는 다른 미래를 지닌, 그리고 역사가 파국의 물화된 악몽이 아닌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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