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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국수와는 또 다른 맛인 칡국수. 쌉쌀하면서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이지만 과거에는 배고픔을 면하려고 마지못해 먹는 음식이었다.
 푸대접을 받던 칡이 국수와 만나 대중의 별미로 떠오르게 한 결정적인 인물은 한명회였다. 성종 때 가뭄이 들자 한명회가 칡뿌리를 보급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한명회는 자신이 칡뿌리를 끓여도 먹어보고 가루로도 만들어 먹어봤더니 배를 채울 만하다고 했다. 이를 들은 성종이 즉각 실천에 옮기니 정말 그럴 듯했다. 이때부터 칡으로 죽을 만들거나 가루를 만드는 등 다양한 이용법이 논의되다가 칡가루와 전분을 섞은 칡국수가 탄생한 것이다.


 이처럼 음식은 역사를 품고 있다. 음식에 얽힌 역사를 알면 음식은 혀끝으로 느끼던 대상에서 인문학적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사유의 대상으로 확장된다. 음식평론가이자 삼성경제연구소 비즈니스를 위한 '글로벌 푸드 스토리'를 진행 중인 윤덕노씨가 펴낸 이 책은 한국인이 사랑한 100가지 음식을 소개한다. 저자는 고서부터 근현대의 신문·잡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헌을 토대로 음식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각기 음식에 얽힌 사연은 역사만큼이나 다채롭다. 음식이 삶이자 역사이며 문화인 까닭이다.


 조선시대 임금도 물에다 밥을 말아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성종이 물만밥(물을 만 밥)을 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힘들어하니 수라상에 물만밥만 올리도록 했는데 무려 40일 이상을 먹었다는 것이다.
 신하들이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중지해야 한다고 간청했지만 성종은 정중히 물리쳤다. "세종 때는 풍년이 들었어도 물에 만 밥을 수라상에 올렸는데 지금처럼 가뭄이 든 때에 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고 무엇이 해롭겠냐"며 신하들의 간청을 거절했다.
 요즘 음식 가운데 찻물에 밥을 말아 굴비와 함께 나오는 정식이 조선시대 물만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러고 보면 음식의 역사도 돌고 도는 모양인가 보다.
 해장국의 별미 선지해장국. 주당들이 간밤에 마신 술로 쓰라린 속을 달래던 선지해장국은 옛날 몽골군도 탐내던 음식이었다.


 여성들은 징그럽다고 꺼리는 선지는 몽골군에겐 꼭 확보해야 할 식재료였다. 13세기 몽골군이 장거리 이동을 할 때 조달한 양식 중 하나가 말의 피였다. 장거리 이동 중 휴식을 취할 때 몽골 기병은 말의 정맥에 상처를 내어 혈액을 마셨다. 짐승의 피는 병사의 체력을 효율적으로 채워주는 좋은 식량이었다. 몽골군이 아시아와 유럽 일부를 포함한 광활한 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선지를 꼽기도 한다.
 그 외에도 동짓날 팥죽을 먹는 진짜 이유, 잔칫날 국수를 먹는 까닭, 50년 전만 해도 돼지고기를 구워 먹지도 않았고 '삼겹살'이라는 말도 없었다는 사실, 부대찌개와 카르보나라의 비슷한 탄생 배경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을 읽다보면 아주 가벼운 음식도 시대 문화적 '사연'이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사실 우리 모두 음식에 사연을 갖고 있다. 소풍날 엄마가 싸주신 김밥, 초등학교 입학식 날 먹은 짜장면, 수학여행 가는 길에 기차에서 먹은 사이다와 계란…. 책과 함께 음식 기행을 떠나면서 나만의 '소울 푸드'를 떠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리=김주영기자 uskjy@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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