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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끝자락은 늘 반성과 새로운 각오가 교차한다. 역사적으로 유난히 크고 돌발적인 사건이 많았던 갑오년이기에 올 한해는 시작부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쳐졌다.

국가적으로는 정치외교적인 문제가 화두가 됐지만 사건은 우리들의 오래된 적폐에서 터져 나왔다. 올해 초 울산 인근의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로 시작된 대형사고는 봄빛이 짙어갈 무렵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재앙으로 우리 모두의 입을 다물게 했다. 울산의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던 여대생은 묻지마 살인범에게 봉변을 당했고, 계모의 학대로 숨진 서현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25개월된 입양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은 울산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산업단지가 밀집한 공단지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폭발·화재 등 대형 사고가 이어졌고, 시교육청은 유례없는 비리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올 한해는 울산의 주력산업이 심각한 불황을 겪으면서 지역경제 위기론이 확산되는 암흑기에 접어들고 있다.

지역사회의 참담한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적폐청산과 맞물려 있다. 낡고 오래된 패악이 오늘의 옷을 입고 버젓이 새로움을 이야기 하는 현장에서 우리는 외관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왔다. 바로 교수사회가 지적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본질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른다는 고사성어보다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의 모습이 부끄러운 시간이다. 교수사회가 지적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정치권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의미가 분명하다.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 문제의 본질을 바로 살필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왜곡된 시각은 갈등을 부추긴다. 공단의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거듭되는 똑같은 지적과 대책은 사슴에게 말의 가죽을 씌우는 꼴이다. 어디 공단 사고뿐인가. 마우나리조트 붕괴 이후 안전시스템의 점검과 단체활동의 안전 문제가 대서특필됐지만 불과 몇 달 후에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만나야 했다.  

울산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민선 6기 출범과 함께 의욕적인 지역공약들이 쏟아졌다. 성과도 있었다. 2조 이상의 국비확보라는 가시적인 성과부터 국립산업기술박물관 건립, 외곽순환고속도 건설, ICT융합 Industry4.0S(조선해양)사업 등 울산시 핵심 3대 사업이 '2014년 하반기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 선정되는 희소식도 있었다. 울산의 미래를 담보할 경제분야의 성과는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울산이 지금 점검하고 내실화해야 할 문제는 경제 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울산을 이야기할 때 산업수도라는 훈장을 떼면 공허할 수 있다. 그 부분은 동의한다. 다만 산업수도를 훈장으로 달고 산업에 창조를 더해 새로운 100년을 이야기할 때 분명히 짚어야할 문제가 있다. 바로 사람이다. 도시는 기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움직인다. 바로 그 사람이 중심이 될 때, 도시의 혈액에 녹아 흐르는 사람다운 삶이 도시의 기본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울산은 새로운 100년을 지향하는 지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허접한 하류문화, 천박한 퇴폐문화가 도시의 이미지가 된 지난 50년을 극복할 문제에 고민하는 리더가 없다. 그저 소득을 올리고 외자를 유치하고 공장을 더 짓고 도로를 더 만드는 문제에 혈안이다. 창조가 대세가 됐고 창조하지 않으면 고물이 되는 세상으로 변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말이다. 창조라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산업이나 경제라는 단어 보다는 사람이 더 가깝다. 창조의 주체는 사람이기에 사람을 위한 미래의 설계가 바탕이 되어야 창조도시와 창조경제는 공허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창조에 방점을 둔 울산의 오류는 사람을 중심으로 창조를 녹일 때 바로잡을 수 있다. 사람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그 기본은 사람에 대한 투자다. 하지만 올해 울산은 사람이 빠진 문제들에 집중했다. 문제는 미래다. 울산이 지향하는 내년의 10대 과제 어디에도 사람은 없다. 사람중심 도시를 위한 울산의 밑그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대학이 부족한 도시, 교육이 언제나 휘청거리는 도시는 뿌리가 흔들리기 마련이다. 시립도서관 하나를 만드는 일에도 1순위에 예산과 효율이 자리하는 도시가 울산이다. 신라 1,000년의 문화적 모태이자 한반도 선사문화의 보고인 오래된 가치를 그냥 지나치는 도시가 울산이다. 시정목표에 품격있고 따뜻한 도시를 지향했다고 품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품격을 갖출 수 있는 사람, 사람이 중심이 된 시정이 구체화될 때 울산은 새로운 100년을 위한 창조적 아이디어가 넘칠 수 있다. 바로 그 해답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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