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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년 덕담으로 무엇이 좋을까 하고 인터넷을 뒤지다 유독 눈길이 가는 글귀가 있어 소개한다. 40대 후반의 아빠와 이제 갓 일곱 살인 막내딸 은솔이의 주고받는 대화가 간결하면서도 가장 적절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어서다. 아빠: 은솔아 내일이 무슨 날이야? 딸: 늙는 날. 아빠: 하하 그래 맞아, 은솔아, 내년에도 잘 자라나는 거야. 딸: 응, 아빠도 잘 늙어! 이 글을 읽는 순간,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그 현란한 덕담보다 이 어린아이의 말 한마디가 정곡을 찌른다. 그렇다. 오늘이 아닌 내일은, 생명이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조금이라도 더 시들게 하고 늙게 한다. 그러나 어린생명과 중년의 생명에게는 이 내일이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앞으로도 성장을 계속해야 할 나이, 성장을 멈추고 퇴보를 하는 나이 사이에는 공유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세계가 있다. 아빠와 딸의 대화가 이를 가장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달라는 아빠의 소망에 딸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추하지 않게 아름답고 품위 있게 잘 늙어달라는 인사로 화답했다. 하나 아쉬움이 남는다면 이를 영상으로 처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예를 들어 신록이 우거진 더 넓은 초원에서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아빠와 딸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 어떤 영상물보다 더 많은 감동이 일게 할 한 폭의 서정화가 된다.

 

   말 삼가는 새해되어야
 근하신년(謹賀新年), 너무 자주 들어 진부하기까지 한 이 글귀도 제대로 알고 실행한다면 이 이상의 길잡이가 없다. 근(謹)을 파자하면 말(言)을 조심하는 것(菫)으로 해석된다. 근하신년이라 하면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우리는 '삼가', 조심하기는 고사하고 가만히 있는 것도 들쑤셔 요란하고 시끌벅적하게 하고 있다. 이 나라의 최고통치권자라는 대통령이 느닷없이 "할 말을 하겠다"며, 온갖 폭탄 발언들을 쏟아냈다. 자신이 발탁한 인사를 놓고 "잘못한 인사였다"고 하자, 이를 전해들은 당사자는 "자가당착이자 자기모순"이라고 맞받았다. 또 자신의 정책을 잘 받아주지 않는 장성(將星) 출신들을 겨냥해 "별이나 달고 거들먹거렸다"고 자존심을 생명처럼 알고 있는 이들을 여지없이 뭉개었다. 이 말을 들은 장성들도 긴급 회동을 갖고 "대통령 탄핵까지 요구할 중대 사안이다"며 흥분하고 있는 등 일파만파를 낳고 있다. 군작전권환수에 반대한다고 해서 이런 막말을 한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평생, 조국의 간성으로 군문에 몸담아 온 저들이다.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와 차기 대선에 도전장을 던진 고건 전 국무총리 역시 자신을 기용했던 인사권자로부터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접을 받고 가만히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한다는 청와대 참모들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이들은 인격비하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어른스런 어른사회 기대
 온 나라가 핏대 올린 쌍말 도가니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판에 어느 대선후보는 마치 자신만이 모든 난국을 수습할 수 있는 냥 내년도 사자성어를 던져 우리를 당혹케 한다. 말인 즉 한천작우(旱天作雨)다. 가문 하늘에 비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조물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할 자연섭리를 일개 인간이 어떻게 자의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인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자신감도 지나치면 따가운 눈총을 받기 마련이다. 삼가 말을 조심하고 처신에 신중해야 할 대선후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자칫 스스로 묘혈을 팔 수도 있다. 작금의 시대상황이 아무리 성에 차지 않고 불만족스럽다 하더라도 대화와 순리로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이 나라가 한시도 조용하지 않고 시끄러운 것이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현재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앞두고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절박한 시기에 최대 관건은 국민화합이다. 그런데도 막말과 제 잘난 맛의 군상들이 넘쳐나고 있다.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새해 덕담으로 한 '잘 늙는' 훈련부터 받아야 할 어른들이다. 올해에는 새해 덕담으로 '잘 커'와 '잘 늙어'로 했으면 어떻겠는가. 아이는 아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살아가는 사회가 언제나 가능할 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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