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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델프트시의 디오케이 중앙도서관의 아트리움 라운지. 자유롭게 음료를 마시며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음식물 반입금지를 주로 원칙으로 삼고 있는 국내 도서관들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본보는 신년을 맞아 '울산, 새로운 100년을 창조한다'는 슬로건으로 도시의 백년지계를 세울 이슈들을 짚어본다. 그 중 첫번째가 울산시립도서관 건립이다. 한 도시를 대표하는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소장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미래가 걸린 백년대계의 공간이다. 잘 지어진 국내외 도서관들은 한 도시나 국가의 자랑거리이자 랜드마크가 된다. 울산 시민들이 오는 2017년 말 문을 여는 울산시립도서관(가칭)에 기대하는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울산에는 시립미술관, 국립산업박물관에 대한 목소리는 높지만 시민 삶과 직결돼 있는 도서관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많지 않다. 특히 6개 광역시도 중 가장 적은 도서관을 갖고 있는 울산의 경우 제대로 된 시립도서관의 필요성이 더욱 간절하다. 울산시립도서관의 그동안의 건립 추진과정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큰 틀에서 살펴본다. 편집자

 

창조도시를 지향하는 울산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울산시립도서관이 2017년 말 남구 여천동 옛 여천위생처리장 이전지에 들어선다. 이 곳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환경적인 이유 등으로 입지 적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부지 재선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본보 2014년 8월 13일자 등 기획보도)
 그러나 울산시는 지난해 9월 행정의 연속성과 중앙투융자 심사와 실시설계용역 착수, 복권기금 사업 확정 등 핵심 절차가 진행됐다는 이유로 재검토를 불가하고 결국 당초 결정을 고수했다. 이에 울산시립도서관은 그 탄생부터 접근성에서 한계를 가진 채 출발선에 서게 됐다.
 최근 인기있는 도서관들이 접근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드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만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디오케이 중앙도서관'의 아트리움 라운지와 무대형 계단. 사진일부 책 '슈퍼 라이브러리' 출판사 사람의 무늬 제공.

#접근성 한계 극복위해 인근에 문화시설 등 유인요소 필요
요즘에는 바쁜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단번에 다양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곳들이 인기가 많다. 각광받는 도서관들이 도심 내 미술관, 박물관 등 타 문화시설과 연계하거나 상점, 쇼핑몰 등 다른 유인요소를 끌어들이는 이유다.
 이에 도서관 전문가들은 시립도서관이 제 역할을 하려면 향후라도 인근에 다른 문화시설이나 관련 업종, 유인요소가 될만한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개방형 직위 공모를 통해 부임한 서울도서관 이용훈 관장은 "울산시립도서관 예정지처럼 접근성이 떨어진다면 시민들을 도서관에 오게 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며 "서울도서관의 이용객이 많은 것은 서울 한가운데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맞지만 단지 접근성이 좋다는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서울광장이라는 요소에 청계천, 광화문광장이 가까이 있다. 지하에는 시민청이란 독특한 공간이 있고 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덕수궁, 경복궁 등 문화재도 가까이 있어 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또 울산시립도서관이 성공하려면 도서관 자체도 대단히 매력적이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서울도서관은 건물 자체가 근대문화재이면서 내부도 벽면서가 등 아름다운 가구로 공간을 구성했다. 전망 좋은 옥상정원도 주목받았다. 이 관장은 이런 것들이 맞물리면서 책을 보러 오는 사람도 많지만 관광으로 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최근에는 도서관 건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울주도서관 한복희 관장은 "지역 대표도서관은 지역의 역사와 미래상을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며 "서울의 정독도서관, 국내 유일 UN자료 기탁도서관인 인천의 미추홀, 디자인&IT전문 도서관을 표방하는 네이버도서관처럼 특색있는 테마와 콘텐츠로 차별화 된 곳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건축은 그 안에 담을 내용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우선 필요한 것은 도서관의 정체성과 성격에 대한 연구다.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사회연구실 박혜영 박사가 지난해 내놓은 '지역 도서관의 발전방안' 관련 이슈리포트를 보면 울산은 도서관 이용시민이 24.4%에 불과하고 이용목적도 독서실의 대체공간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높다.
 이에 박 박사는 "울산시립도서관 건립을 앞두고 지역 도서관이 제 기능을 찾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자 울산 남부도서관 학교도서관 지원협력과장도 "시민 여론을 수렴하는 한편, 최근 도서관이 영화, 미술전시, 다양한 책관련 활동이 이뤄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는만큼 새로 문을 여는 시립도서관은 복합문화공간의 기능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며 "전문적으로 음악을 감상하고 공연, 미술전시를 볼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준모 울산대도서관 학술정보서비스팀장도 "과거세대는 도서관에서 책에 코를 파묻고 공부를 했지만 지금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공부하는 등 다른 성향을 보인다"며 "음식물 반입금지, 정숙 등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북카페 형식 등의 새로운 서고를 마련하고 디지털자료실을 확대하는 등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공도서관의 계단식 잡지부스. 무대 객석 형태로, 책을 보관한다기보다는 전시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울산시 도서관 정책 총괄 대표도서관 기능 기대
또하나 시립도서관의 중요한 역할은 대표도서관의 기능이다.
 시립도서관은 '도서관의 도서관'으로서, 울산시 도서관 정책을 총괄하고 지역내 공공, 작은도서관을 지원하는 콘트롤 타워로서 기능해야 한다. 이에 정책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민 피부에 와닿아야 한다.
 현재 울산에는 공공도서관 15곳(대학도서관 4곳), 구군별 작은도서관이 127곳 (2013년 12월 기준) 있다. 대표도서관이 생긴다는 것은 이들 공공도서관 및 작은 도서관의 정책도 아우르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건립과 더불어 울산시가 '상호대차서비스'나 '메타검색시스템' 등을 갖춘다면 우리는 책이 소장된 다른 구군의 도서관을 가지 않더라도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다. 특정 도서를 찾기 위해 각 도서관 홈페이지를 방문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울산의 도서관들은 늘 인력난에 허덕였다. 타 도시처럼 재정이 어렵다보니 법정 사서배치 기준의 절반은 커녕 그 절반도 못 미치는 인력을 보유했다. 그럼에도 주민 요구는 높다보니 야간개방, 각종 프로그램 개발 등으로 업무량이 과중한 상황이다. 단순업무에 밀려 좋은 책을 소개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성장시키는 사서 본연의 역할이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표도서관에서 제대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제공한다면, 산하도서관들은 강좌, 교육, 행사 프로그램 개발 등에서 한시름 덜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의 즐길거리가 늘어남은 물론이다.
 또 도서관을 가장 매혹시키는 것은 결국 장서다. 특히 울산의 도서관들은 그동안 전문서적 보유면에서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던 만큼 제대로 된 장서개발정책 및 자료목록수집 조사 용역 등을 통해 그동안 부족했던 장서개발에도 힘써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현재 울산시는 개관당시 일반자료 20만권, 어린이 자료 4만권 보유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는 서울도서관 개관자료와 비슷한 규모다.
 또 보존서고는 100만권 양으로 잡고 있다. 이는 서울도서관이 현재 매해 신간을 4만권 씩 늘려가고 있음을 감안하면, 30년도 못 가 꽉 차는 규모다.

▲ 네덜란드 델프트시의 디오케이 중앙도서관은 멀티미디어 음악 청취공간을 마련하는 등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울산학 자료실·기록관 설치해야
끝으로 울산의 정보중심지가 돼야할 시립도서관이 꼭 갖춰야 할 시설로 요구되는 것은 '울산학 자료실' 혹은 기록관이다.
 서울자료실, 서울기록문화관이 그 예로 시립도서관에 울산에 관한 모든 책과 자료를 기록, 저장하는 것이다. 그동안 울산은 시사편찬위원회를 비롯해 시 기록문화관 등 아카이브 공간과 인력이 제대로 구축돼지 않았다. 박물관에도 이런 공간이 없다. 이곳을 통해 울산은 그동안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지역 향토사 자료와 울산에 관한 모든 책과 자료 등을 보관,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최근 도서관은 편안하고 일상적인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정숙을 요구하고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울산시립도서관 역시 시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지식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개인의 삶을 성장시키는 공간이 돼야 할 것이다.
 또 대표도서관 답게 울산이란 한 '도시의 거실'로서, 세계로 때로는 지역안으로 파고들 수 있는 길잡이가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울산시가 당장 시작해야 할 것은 행정 편의주의에서 벗어나 거실의 주인이 될 시민들의 의견을 두 귀를 활짝 열어놓고 듣는데서 부터가 아닐까. 시민들이 실질적인 주인으로 도서관 짓기에 참여할 때 물리적 거리보다 중요할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고, 벌써부터 문 여는 것이 기대되는 그런 도서관이 만들어질 수 있다.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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