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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을 바꾸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한국 축구 이야기다. 슈틸리케가 K리그에서 그저그런 선수였던 이정협을 뽑아내 유망주로 키우겠다고 선언하자 축구협회는 재고를 요청했다. "잘못되면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돌아간다"는 조언이었다. 이후 슈틸리케는 이정협이 뛰고 있는 상주를 다섯 번이나 더 찾았다. 슈틸리케가 본 것은 축구 그 자체였다. 사족으로 히딩크의 대표팀 훈련 과정이나 홍명보의 몰락을 거론하고 싶지만 여기까지만으로도 감독의 본질은 충분하다. 자신의 책무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축구대표팀 감독이든 기업의 CEO든 하물며 한 국가의 통치자든 다르지 않다. 어떤 시각으로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를 제대로 보는 일은 그래서 미래와 직결된다.
 

 한국갤럽이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직후인 지난 13~15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부정적(55%) 평가가 우위였다. 한 주 전에 비해 긍정은 5%포인트 떨어졌고 부정은 4%포인트 올라갔다고 한다. 긍정 평가 35%는 박 대통령 취임 후 최저치다. 문제의 핵심은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대구·경북과 50대 응답자층에서 처음으로 부정적 평가가 더 높게 나왔다는 사실이다. 대선 때 박 대통령에게 표를 줬던 사람들까지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비판적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이 오늘의 여론이다. 창조경제와 개혁의 양대 깃발을 흔들고 있는 대통령에게는 아쉬운 대목이지만 여론이 깃발에 동력을 주지 못하는 형국이다. 여론이 흔들리는 이유야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지만 무게 중심은 역시 비서실장이다. 여론의 향방을 제대로 짚고 문제의 핵심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역할은 비서실장의 책임이다.
 

 신년회견을 본 국민들은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미간을 찡그렸다. 논란의 중심이라는 '문고리 3인방'을 두둔하고 일련의 권력 암투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평가절하했다. 신년회견 직후 김무성 대표의 수첩이 공개되면서 청와대 행정관이 또 사표를 냈다. 청와대가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이다. 망둥이에 꼴뚜기까지 뛸 수 있는 것들은 물론이고 뛰지 못할 것 같은 것들까지 팔짝거리니 대략난감이다. 그래도 청와대 안방을 책임진 비서실장은 자신의 미간만 찌푸릴 뿐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지난 2012년 말 대선 시절로 거슬러 가보자. 문재인 후보와 한판 승부가 한참인 시절,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울산을 찾았다. 소통을 위해 울산의 언론인과 오찬을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여론을 가감없이 듣고자 하는 후보의 눈빛은 진지했다. 당시에도 그는 수첩을 꺼내 울산 언론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진지하게 적었던 기억이 있다. 필자는 당시 후보의 옆자리에서 90여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산업박물관이나 동북아 오일허브 등 지역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오찬장이었지만 필자는 불쑥 '친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답은 언론에 보도되는 수준과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친박이니 반박이니 하는 이야기는 언론이 하는 것이죠. 우리에겐 그런 거 없습니다" 바로 그 지점이다. 세상의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이야기가 나돌아도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으면 '별 것 아닌' '언론이 지어낸' 말풍선이라는 시각이다.
 

 당시 '친박'과 '비박', '반박'이 언론에 거론되고 실체하지 않더라도 엄연히 당내에 정서가 이런 쪽으로 선을 가르고 있다면 현상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필자의 말을 수첩에 적지 않았다. 다만 울산지역 국회의원들의 불편한 눈빛과 그의 겸면쩍은 웃음이 기억될 뿐이다. 오래전 이야기를 다시 돌렸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것이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다. 혹자는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는 인사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혹자는 여론을 제대로 읽을 창구가 봉쇄돼 있다고도 이야기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보고 듣는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것만 듣고 스스로 평가해 버리는 대통령의 스타일이 오늘의 소통부족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오히려 객관적이다.
 

 문고리 3인방이든 십상시든 대통령이 그들을 보는 시각과 국민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가진 신비주의는 국민이 보는 시각이지만 문고리나 십상시의 눈에는 대통령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핵심은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지금 벌어지는 현상이다. 청와대가 이정도로 만신창이가 됐다면 대통령의 결단에 앞서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이들의 행동이 우선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말이다. 정치권은 그저 대통령의 결단만 주문한다. 뭘 결단하라는 것인지 뻔한데 추상명사만 요란하다. 청와대는 시간만 끌면 여론은 가라앉을 것이라 판단하는 듯하다. 검찰수사에서 문제가 있는 이들은 다 드러났고 사표 낼 이들은 스스로 떠났기에 모든 일은 다 마무리됐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책임져야할 인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읽은 듯하다. 그러니 스스로 옷을 벗지않고 있다. 먼저 벗는 것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 자위할지 모를 일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스스로 책임질 때 여론은 다시 대통령의 눈빛에서 진정성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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