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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청소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객관적인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정책 사업에 반영하고자 한다는 울산시 청소년활동진흥센터(이하, 진흥센터)의 요청으로 지난 해 청소년의 삶과 생활, 필요와 요구를 알기 위한 실태조사를 함께 진행했다. 전국 단위의 '청소년종합실태조사'가 우리 청소년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규모의 조사 결과를 읽는 것이 대개 새로운 의문으로 끝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청소년에 대한 전국적 조사 결과가 아주 낙관적이지만 않을 때 우리 지역 아이들에 대한 세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한 즈음 진흥센터의 기획과 추진은 의미가 적지 않았다.
 4개월. 선행 문항을 인용해 보고 수정하고 새로운 문항을 만들고 검토와 의논을 거듭하며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종이와 글자로 만나게 될 '정책'이 아이들에게 친근하기를, 친절하기를, 질문 형식과 문체, 글자모양까지 바꾸며 다시 1개월을 보냈다. 아침은 먹고 다니는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외롭지는 않은지, 힘이 들 땐 어떻게 하는지, 도움을 청할 사람은 옆에 있는지, 재미가 있어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것인지…. 묻고 싶은 것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왜 그렇게 많은지, 힘겹게 문항수를 줄여야 했던 시간이었다.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국가와 지방정부 각계각층의 정책적 포커스로 더욱 확대되는 요즈음 어떠한 보고서, 어떤 연구자도 청소년이 만나고 있는 현재, 보람과 즐거움, 위기와 혼란 이면에 절대적인 변인으로 가족, 가정환경이 존재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가족생활에서 지금보다 늘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은 그리하여 연구자들이 포기할 수 없는 문항 중 하나였다.
 아이들에게서 듣고 싶었다. 집에서 누구와 무엇을 더 하고 싶니? 정답을 알려드리기 전에 잠깐 2초간만 먼 산을 보고 짐작해주시길…. 아이들은 더 많은 시간 함께 대화하고(남학생 68.3%, 고등학생 65.3%), 더 자주 같이 밥을 먹고(남학생 61.3%, 고등학생 60.0%) 싶어하였다. 아.버.지.와.
 

 늦어진 비행기시간에 대책이 없어 진 로스앤젤레스의 밤거리에서 카머씨(Mr, Kamer)는 인근 마을의 낯선 히스패닉 청년 세 사람에게 얼마간의 현금을 조건으로 공항까지 차를 태워줄 것을 부탁한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이제 어쩌면 몇 분 후면 내 트렁크는 저들과 함께 떠나고 나는 길에 홀로 버려지겠지? 흠씬 두들겨 맞고 옷까지 뺏기지는 않을까?' 급한 마음에 섣부른 결정을 한 자신을 원망하며 후회와 불안으로 떨고 있는 중년의 남자를 세 청년은 절반의 측은함으로 안심시킨다. '괜찮아요. 저희는 착한 아이들이거든요.' 짧고 특별한 이 여정을 통해 그는 하나의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갱단에 있는 아이들이 마을에 많던데 너희들과 그 아이들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이야기가 오고간다. 마침내 세 청년의 답에 공통된 키워드를 발견한다. 아.버.지. "아버지는 항상 뒤에서 저를 지지해주시거든요. 제가 탈선을 하지 않도록 말예요."
 

 청소년기는 지식뿐 아니라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행동양식, 정서적 반응, 타인에 대한 이해, 관계의 방식, 무엇보다 스스로 이해하고 자신만의 삶을 준비하는 토양을 학습하고 체득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이 '학습'에는 좋은 가치의 것들만 배타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터. 대표적인 예로 심리학자들은 종종 '비열함'을 든다. 비열함. 터무니없는 폭력을 정당한 것으로 인지하게 하고, 타인의 고통과 수치, 상처와 슬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잃게 만들며 급기야 무소불위의 잔인함과 무감각을 불러오기도 하는 이 '비열함'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 속에서 겪거나 배우거나 혹은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결코 유쾌하기 어려운 이 감정, 이 행위, 피해나 가해의 경험이 청소년기에 재현되는 이유를 학자들은 '나쁨'이 아닌 '단순한 어리석음'에서 찾는다. 아이들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열함'은 대개 엄격하고 단호하지만 동시에 강하게 지지받으며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의 가르침으로 비로소 중단하고 통제되고 청소년 스스로가 선택적으로 배타해나가는 가치 중 한 가지로 떠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엄격하고 단호하게 그러나 강한 지지와 믿음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어른의 이름. 그 이름으로 아이들은 아버지를 호명한 것이 아닐까. 남자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언급하며 심리학자 비덜프는 말한다. '아이들은…비슷한 상황을 누군가가 잘 처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때야만 이런 기술(skill)들을 배울 수 있다.' 심지어 미체를리히는 '자신의 아버지가 낮에 그리고 일 년 열두 달 무슨 일을 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면 아들의 영혼에는 구멍이 생긴다'는 무서운 표현까지 한다. 마무리 전에 잊지 마시길 살짝 웃으며 당부드린다. 부족한 대화를 시도하던 아버지의 슬픈 이야기를. 아버지: 아들, 우리 너무 대화가 부족하구나. 자주 이야기하도록 하자, 아들: …, 아버지: 너 요새 반에서 몇 등하냐? … 잔잔히 기억해주시길. 대화는 반드시 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때론 시간이거나 체온이거나 눈빛이거나 공기의 흐름일 수 있으며 아이들은 그것으로도 지지와 신뢰를 충분히 흡수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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