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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이야기해서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공짜로 기름을 넣고 공짜 점심을 먹는 생활이 직장인들의 꿈은 아니다. 그러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아이들에 대한 부분이다. 유아들에게 무상보육을 하고 초중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하자는데 시비를 거는 문제는 좀 껄끄럽다. 엄연히 세금이라는 의무를 다하면서 '권리'의 일부인 급식에 '공짜'라는 위장된 어휘를 갖다 붙이니 반응이 이상하게 나온다. 바로 그 지점을 과거 진보좌파가 절묘하게 이용했다. '공짜'가 아니라 권리라는 논리는 아이들의 밥이라는 문제와 결부돼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켰다. 이번에는 한 술 더해 공짜가 아니라 공공급식이라는 묘한 어휘를 차용해 공짜에 대한 거부감까지 희석시키는 분위기다.
 

 그런 장면에서 홍준표 경남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했다. 뜨악, 선출직인 도지사가 아이들 밥그릇을 빼앗는 모험을 감행했다는 것은 찬반을 떠나 전국적 이슈가 됐다. 당연히 경남지역 학부모들과 전교조 등에서 거센 저항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급기야 야당 대표는 도지사실을 찾아 삿대질을 하고 뒤돌아 씩씩거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무상급식 지원예산을 '선택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서민자녀 교육지원사업 관련 조례안으로 맞서는 상황이다.
 어제 아침, 모 방송에 출연한 홍 지사는 야당측 출연자의 무상급식 문제를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에 "공짜로 주는 문제를 놓고 투표를 하는 바보가 어디 있냐"고 일축했다. 여당 대표 시절,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로 주민투표 실시를 선언했을 때 오 시장을 향해 던진 한마디와 같은 발언이었다. 맞는 말이다. 공짜로 주겠다는데 투표를 하는 바보는 없다. 하지만 그런 바보가 존재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공짜'는 좋겠지만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들의 더 많을 것이라는 오세훈의 '착각' 이후 우리 사회는 '무상시리즈'가 대세가 됐다. '공짜'로 들이대는 좌파의 논리가 '이건 아닌데' 싶은 보수의 목소리를 땅에 파묻어 버렸다.
 

 제기랄, 이왕에 받는거 무상보육에 무상 산후조리까지, 아니 가능한 더 많은 '공짜'면 어떨까 싶지만 한번쯤 이 지점에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바로 그리스 이야기다. 관광대국이자 조상 잘 둔 덕에 인류 종말의 순간까지 밥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을 것이라던 그리스는 1981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총리가 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수재가 총리가 됐으니 그리스 경제는 탄탄대로를 달릴 줄 알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중도로 포장한 그의 정치 이념은 뼛속까지 좌파였다. 좌파의 선동정치와 포퓰리즘에 매력을 느낀 그는 가능한 그리스 국민들에게 인기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무상복지 시리즈'였다. 그는 총리가 되자마자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고 하며 대중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무상 시리즈를 정책의 1순위로 흔들었다. 다 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지지율은 올라갔고 파판드레우는 소크라테스보다 더 추앙을 받았다.
 당시 그리스의 무상시리즈는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정부지출을 늘려 의료보험 혜택을 전 계층으로 확대했고, 노동자의 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사용자가 거의 없는 오지에도 학교와 병원을 지었고 국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 해외유학을 보냈다. 그 뿐인가. 국민들에게 주말 여행비를 대줬으며,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투표를 위해 그리스로 오도록 무료 항공권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판드레우의 포퓰리즘은 끝이 보였다. 재정 파탄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국가부도와 사회적 혼란은 당연한 결과였다.
 

 선동으로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의 기반은 천민민주주의다. 공짜를 깃발에 새긴 채 흔들어 대는 정치인의 뒤통수는 늘 가렵기 마련이다.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든 국가재정 파탄의 이들이 번식을 시작하는 것이 보이지만 당장 요란한 박수와 환호에 가려움을 참아내는 일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포퓰리즘은 사회를 분열로 이끈다. 가뜩이나 두갈래로 갈라선 우리 사회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의 '무상시리즈'로 대기업(재벌)과 중소기업, 부자와 서민, 엘리트와 대중, 반대자와 찬성자로 사회를 갈라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
 문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상논란의 근원이 참신하거나 투명하거나 당당하지 않다는 점이다. 홍준표든 문재인이든 과거 오세훈이든 박원순이든 정치인들의 배후에는 선거에서의 승리와 집권이라는 야망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무상시리즈'의 허구성을 공격해 좌파를 무너뜨리겠다는 쪽이나 '공짜'를 '공공'으로 포장해 아이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나쁜 정치인'들을 아작 내겠다는 쪽이나 모두의 목표는 하나다. 그로부터 얻어낸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2016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2017년 대선에서 정권을 잡겠다는 게 본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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