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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재촉하는 봄비다. 창밖을 보니 꽃밭의 나뭇가지들이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바람이 촉을 틔우게 하고 있다. 바람결에 아버지의 옥양목 두루마기자락이 펄럭인다. 그 사이로 아버지의 옛이야기가 스멀스멀 비처럼 베어든다.
 내가 태어나기 전 6. 25사변이 일어나던 해라고 들었다. 그때 학생들은 학도병으로 나이가 조금 먹은 사람들은 보국대로 하루아침에 동네에서도 몇 명씩 불려갔다. 군대 소집이 두서가 없어 어떤 사람은 소속도 모르고 차출되어 갔다. 그런 사람 중에 아버지도 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설 같은 일들이 바로 현실이었다. 총알이 소나기처럼 퍼붓는 날도 있었고, 비행기가 머리 위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공포의 연속이었다. 낮과 밤이 따로 없고 산속에 가랑잎으로 이불을 삼아 덮고 자며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이승과 저승을 하루에도 수도 없이 넘나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포로가 되어 북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앞뒤로 총부리를 겨누며 어디론가 끌고 가는 것이었다. 일개 소대쯤 되는 동료들이 어딘지도 모르고 낮도 밤도 없이 북으로 향했다. 어느 날 밤이 이슥해지니까 허름한 창고에 가두어 두고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문 밖에는 총을 든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몇십 명 되는 동료들은 피곤함에 지쳐 모두 깊은 잠에 빠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는 척하고 있다가 눈을 떠보니 조그만 봉창이 하나 있었다. 그 사이로 달빛이 새어 들어와 갇혀있는 사람들을 근심어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고향 하늘에서 보던 달빛과 같이 평온하게 보여 콧등이 찡해 오더라고 했다. 강을 건너 영을 넘어도 함께 따라온 달님이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때 옆에서 잠을 자던 사람이 살살 일어나더니, 사람 머리 하나도 겨우  들어갈까 말까 한 봉창으로 뛰어내렸다. 순간 아버지는 숨이 완전히 멎는 줄 알았다고 했다. 감전된 듯 전신의 기가 곤두세워져 가만히 있으니 또 한 명이 뛰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숨을 죽이고 순간 생각에 잠겼다. 끌려가도 살아남는다는 보장도 없고, 뛰어내려도 살아남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양쪽을 저울질했다. 앞뒤 동정을 살피니 긴 여정에 얼마나 피곤했는지, 문밖에서는 문지기도 코 고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세상을 살면서 그만큼 절박할 때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한평생을 살아도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명창이 부르는 노랫가락이 아니며, 흔히들 잘 부르는 유행가 평양기생 일편단심도 아니다. 오직 그때의 문지기가 코를 고는 소리이며, 그 소리만큼 고마운 소리가 없었다. '이때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 온 전신의 기를 모아 봉창으로 다가가 뛰어 내렸다. 신경을 곤두세워 뛰어내리고 보니 첨벙하고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였다. 웅덩이 옆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꽉 들어서 있었다. 얼마나 촉각을 세웠던지 가시도 박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앞서 뛰어내린 사람을 따라가려니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낮에는 적군에게 발견되면 그 자리가 무덤이었다. 산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찾아오려니 방향을 알 길이 없어 막막했다. 나무는 남쪽으로 가지를 많이 뻗어 나간다. 따뜻한 쪽이 단풍이 먼저 든다는 생각에서 나뭇잎을 보며 방향을 짐작해 길을 찾아왔다는 아버지다. 이야기를 마치고는 이마에 돋은 땀을 닦으시며 허허 웃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가시밭을 달리며 생사를 넘나들던 그때가 떠올려지는 듯 보였다.
 

 요즘 사람들은 생명과 삶들을 너무 쉽게 여기며 사는 것은 아닌지, 얼핏 하면 터져 나오는 가사를 볼 때마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귓불을 때린다. 주어진 몫에서 최후의 삶을 사는지 나를 뒤돌아보게 된다.
 사람의 촉감이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최고의 빛을 발휘하는가 보다. 촉감이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존재를 지녔다. 마음의 촉은 칼이나 낫이나 연장으로 다듬어지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스스로 잠재되어 있다가 나오는 것이라서 형체는 없지만, 실체가 있는 것보다 더 촉을 발휘하게 된다.
 아버지가 소나무 껍질을 벗겨 목숨을 연명하며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촉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촉은 잠재된 힘의 원동력이다. 때에 따라 기능을 바꾸어 물 위를 날 수도 있고, 물 위를 떠다닐 수도 있는 위그선 같은 힘이 아니었나 싶다. '촉감'은 어떤 형체를 지닌 것보다 강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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