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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한 이야기다. 나는 니가 지난 여름에 뭘 했는지 알고 있다. 그래, 난 널 지난 여름에 본 일이 없어. 아차, 잠시 스쳐 지나간 기억은 있구나. 인사 정도 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겸연쩍게 웃거나 단호하게 부인하는 일은 익숙한 장면이다. 필요 없으니 버리는 건데, 필요충분조건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 치지 못한 삶을 탓해야 한다. 그쪽 생태계가 원래 그런줄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갑이든 을이든 병이든 정이든 말이다. 사냥터의 치열함이 끝나면 식욕을 채우는 일이 급하다. 먹고 마시는데 쏜살처럼 빠른 개는 안중에 없다. 딱 그 장면이다.
 우리 현대사에 검찰 수사를 받다 숨진 정재계 인사는 수없이 많다. 지난 2009년 5월,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재임중 친인척 비리 혐의로 전직 대통령 가운데 세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었다. 현대가의 정몽헌 회장 역시 비자금 사건이 구체화되자 지난 2003년 8월 4일 현대 사옥에서 몸을 던졌다. 2004년엔 유난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정재계 인사가 많았다. 2월 운수업체에서 뇌물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은 부산국세청 공무원 전 모 씨가 승용차에서 분신한 뒤, 다음 날 같은 회사에서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 구치소에서 목을 맸다.
 안 전 부산시장의 자살은 뒷이야기가 많았다. 수십억 재산가이자 부산시 공무원들의 우상이던 안 시장의 자살은 한 때 부산사회에 '기획자살'이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로 흉흉했다. 노무현 정부의 여권 단체장 길들이기의 첫 번째 재물이 안 시장이고 두 번째 재물은 김혁규 당시 경남도지사라는 살생부까지 돌았고 김 전 지사는 얼마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꼬리를 내렸다.
 같은 해 3월에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한강에 뛰어들었다.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에게서 인사청탁 대가로 3,000만 원을 건넨 혐의로 조사를 받은 직후였다. 남 전 사장이 자살하기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좋은 학교 나오신 분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머리 조아리고 돈 주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회견을 했고 그 장면이 한강 다리에 남긴 남 전 사장의 구두 한 켤레와 클로즈업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어 4월에는 건강보험공단 재직 시절 납품비리 의혹으로 조사 받은 박태영 전남지사가 한강에 몸을 던졌다. 대충 이정도만 정리했지만 이 외에도 자살의 릴레이는 이어졌다.
 며칠 전 새벽에 집을 나온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은 나오는 장면부터 북한산 자락에 들어서는 장면까지 CCTV 화면이 생중계 했지만 죽음을 막지 못했다. 한 언론은 죽음 직전의 그와 인터뷰 한 내용을 무슨 전리품 마냥 대서특필하며 목마른 이 목을 적시듯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 한시간 가까이 통화를 하고 녹취하는 동안 경찰에 위치 추적이나 신고를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묻는 이는 없다. 움켜쥐고 터뜨려 한건 하겠다는 욕망이 팽팽하다.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이다. 뭐, 그가 죽을 줄 어찌 알겠나. 따끈따끈한 박근혜 정부의 안주머니를 뒤지는데 신고는 왜하나 싶겠지만 한사람의 목숨 줄이 그 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갈랐다.
 정치하는 사람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화장품은 잘 골라 사용해야 한다. 매일 아침 세수를 하고 민낯으로 만나는 거울 앞의 모습은 참담하다. 가능한 그 민낯을 가리기 위해 온갖 분칠을 하고서야 카메라 앞에 서겠지만 그래도 분칠의 흔적이 울긋불긋하다. 착색이 잘되고 번지지 않는 화장품 하나 제대로 골라 사용해야 한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분들에 대한 이야기다. 한 때 허리띠 풀고 호탕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가 없다고 정색을 하면 곤란하다. 살아 있는 권력이 튼튼한 방패가 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그가 기억하듯 국민들도 기억한다. 스스로 지난 여름의 일들과 그 여름의 햇살까지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안상영 전 부산시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고초를 겪었다. 웬만해선 속내를 보이지 않던 그는 당시 지인들에게 "청와대에서 도와달라니 힘들다"고 직접화법을 전했다. 그를 알던 지인들은 당시 상황을 두고 "정권에 협조한다는 것은 당적을 바꿔라는 의미였고 거부하자 여자문제에 금품수수까지 터졌다"고 술회했다. 털면 나오는게 공직비리라는 공식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그래서 각색하면 감춰지는 게 아니라 더 돋보인다는 이야기다. 가능한 질 좋은 화장품으로 민낯을 가리고 각색하기보다는 대본을 완전히 새로 쓰는 쪽이 보는 이나 말하는 이 모두 어색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뻔한 이야기는 하지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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