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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밝음이 없으면 어떤 사물도 볼 수 없다. 사진을 단적으로 빛의 예술이라 말하는 이유도 빛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밝음은 어둠과 반대 개념으로 밝음이 지혜로 비유되며 어둠이 어리석음으로 비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엄경(華嚴經)' 제16권 '승수미산정품(昇須彌山頂品)'에서 연등불(燃燈佛)의 다른 이름인 정광불(定光佛)·등광불(燈光佛)·보광불(寶光佛)·정광불(錠光佛)과 보살들이 섬긴 수특월불(殊特月佛)·무진월불(無盡月佛)·부동월불(不動月佛)·풍월불(風月佛)·수월불(水月佛)·해탈월불(解脫月佛)·무상월불(無上月佛)·성숙월불(星宿月佛)·청정월불(淸淨月佛)·명료월불(明了月佛), '법화경'에 등장하는 일월연등불에서 유독 밝음을 뜻하는 '일''월''광''연등'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도 어둠과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지혜를 증장시키는 현상과 관념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빛은 현상계에서는 어둠을 소멸하지만 철학적으로는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을 밝힌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는냐?(마태5:15)'라는 성경구절에서도 등불의 용도를 비유로 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의 같은 경 같은 품에는 제석천왕이 묘승전(妙勝殿)에 보광명장(普光明藏)이라는 사자좌(獅子座)를 준비해 놓고 과거칠불을 모셔 청법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 이전의 부처를 과거칠불(過去七佛)이라 말한다. 칠불 가운데 일곱 번째 부처를 연등불이라 부르는데 연등불은 명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어둠을 밝히는 등불인 연등과 같다.

   석가모니가 유동보살로 수행할 때 미래세상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했다. 수기를 준 내력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연등불은 과거세에 석가모니가 유동보살로서 보살계를 닦으면서 스스로 부처가 되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그러던 중 어느날 연등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곱송이 연꽃을 공양올렸다. 연등불은 흔쾌히 받고 그대는 미래세에 석가모니라는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주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연등불이 온다는 말을 듣고 유동보살이 미쳐 연꽃을 준비못해 연등불이 지나가는 진흙길에 엎드려 몸을 밟고 지나가게해 그 공덕으로 미래세계의 부처로 수기했다는 것이다.

 '현우경(賢愚經)'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는 '너는 오는 세상 두 아승지와 백 겁 동안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등광(燈光)이라 하고, 열 가지 호를 완전히 갖출 것이다'라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이 설화는 가난한 여인 난타(難陀)가 불전에 켜 올린 작은 등불공양 공덕으로 석가모니 부처로부터 미래세상에 등광불의 수기를 받는 내용이 전한다.

 '학성지' 풍속 조에는 매귀악의 연행을 기록하고 있다. 연행을 간추려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포시에 각자 사목을 네거리에 모아 쌓아서 종이 깃발과 함께 태운다. 풍물을 치면서 등광궐아괘보살 7자를 천천히 서로 큰 소리로 부른다. 나무가 모두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매귀악을 한다.'

 앞에 소개한 '화엄경'의 불보살, '현우경'의 빈녀난타의 등광불, '학성지' 매귀악 등 광궐아괘보살 등의 공통점은 어둠을 밝히는 연등과 관련된 내용이다.

 정리하면, 유동보살에게 수기준 연등불과 가난한 여인에게 수기한 석가모니의 설화를 바탕으로 울산만의 독창적 매귀악이 생성됐다는 필자의 가정(假定)이며 그 중심은 '등광궐아괘보살'의 찬탄 게송 일곱 자에 있음을 주장한 적이 있다. 현재까지 '등광궐아괘보살'에 대한 해석과 결과는 한마디로 군맹무상지격(群盲撫象之格)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객관적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하겠지만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매귀악과 병영서낭치기는 생성과 연행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혼합해 하나로 연행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88년 이유수(1926~2007·전 울산향토사연구 회장)가 '울산문화 제4집(1988)'에 '매귀악의 연구와 복원'이라는 제목의 글과 1996년에 '울산향토사연구논총'을 발행하면서 같은 내용을 실으면서 비롯됐다고 짐작된다. 현재 복원에 관심을 두는 것도 향토인보다는 외부 초청 학자들 제언에 편중해 무검토,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실정으로 보인다.

 이제부터라도 "공연한 자부심으로 무검토 무비판적으로 존속시키는 것은 백해(百害)에 일리(一利)가 없는 것이니…"라고 '민속극 동래야류 - 그 復活에 際하여 一言함'을 1935년에 말한 송석하의 파심(婆心)을 타산지석으로 다시한번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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