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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주기를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이 지난 주말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야당이 사분오열의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여당의 대표가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오름세를 유지하는 상황이어선지 이번 추도식은 고인에 대한 추모의 뜻보다 현실 정치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자리가 됐다. 선방을 날린 쪽은 친노계였다. 노무현의 아바타를 자처하듯 그의 아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 자리엔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오셨습니다"로 시작한 그의 발언은 김무성에 대한 야유와 조롱으로 이어졌지만 그 저변에는 현재의 권력에 대한 분노와 자살한 아버지를 둔 아들의 복수심이 절절했다.


 노무현의 아들이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사실 관심사가 아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6년전 그가 독설을 내뱉고 울분을 토했다 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다만 느닷없이 6주기인 시점에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는 반성도 안 했다"며 시작한 그의 분노가 "국가 권력자원을 총동원해 소수파를 말살시키고, 사회를 끊임없이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 세우면서, 권력만 움켜쥐고 사익만 채우려 한다"는 독설로 이어지는 장면은 참담하다. 한술 더해 일부 친노세력과 지지자들은 "이것이 바로 노무현 정신"이라며 환호하는 대목은 소름이 돋는다.


 노무현과 그의 가족이 우리 사회를 향해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가 뭐라해도 우리 정치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권력층에 만연해 있던 권위주의와 정경유착을 타파하고 기존 보수 정권이 하지 못했던 각종 개혁을 온몸으로 실천한 행동은 그의 업적이다. 구체적으로는 상속증여세의 포괄주의를 도입해 재벌 총수들의 탈세 여지를 좁히고 재벌개혁 중 하나인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를 시행하고 재벌기업들 사이의 담합에 대한 적발과 처벌도 강화한 것은 우리 경제의 암적 요소를 제거하려는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더구나 불법대선자금을 밝혀 정경유착을 없애려는 노력이나 돈 안드는 선거를 만들기 위해 기득권에 도전한 정치개혁은 높이 평가할 사안이다. 하지만 그의 맑은 눈빛과 달리 보이지 않는 이면에 있던 비리의 고리는 추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친인척의 비리를 경계하여 인명부까지 작성해 관리했지만 부인과 자녀 등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본인은 부인과 가족이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포괄적 뇌물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그 일로 결국 이승을 등졌다. 자신의 딸 등 가족들이 문제가 되는 돈으로 미국 주택을 샀고 아내가 개당 1억원 상당의 명품 외제시계 2개를 받았다는 등의 비리부터 여러 가지 추문이 나돌았다. 친형인 노건평은 세종증권 매각비리 의혹과 관련, 농협의 인수 청탁과 함께 2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자신의 비리를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검찰이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을 체포하자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 공식 홈페이지에 부인 권양숙이 박연차로부터 돈을 받아 사용했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급기야 2009년 4월 12일, 뇌물 수수 관련 혐의로 그의 부인인 권양숙이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고 같은 날 아들 건호씨가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뇌물로 받은 억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박연차 회장은 노무현 가족의 금고라는 이야기도 나돌면서 노 전대통령의 고뇌는 깊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불과 며칠후 그가 부엉이 바위에서 이승과 등진 후 실체없이 사라졌다.


 그런 그의 가족이 마이크를 잡고 '증오'를 쏟아냈다. 아버지를 보낸 아들의 분노를 백번 이해한다해도 '증오'의 행간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의 생각만 옳고 자신과 다른 이는 증오의 대상이 되는 사회를 보고 자랐으니 모두가 우리 사회의 책임일 수도 있다. 다만 그가 뱉은 말이 그의 생각과 철학이 담긴 오롯한 자신의 목소리라면 그래도 한번쯤은 넘어가고 싶다. 그런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불행한 일이다. 만에 하나 그의 목소리에 친노 패권주의 세력의 배타성과 증오의 정치가 밑그림으로 깔려 있다면 문제는 다르다. 흔히 이야기 하는 '노무현 정신'은 패권주의와 지역주의, 권위주의와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핵심이다. 김무성 만이 아니라 비노세력에게 보인 추도식의 추태는 바로 '노무현 정신'과 동떨어진 일이다. 친노가 하나로 뭉쳐 증오의 언어를 세상에 뱉어내는 정치는 그냥 분노가 아니라 증오이자 조롱이다. 이런 조롱, 이런 증오를 거름삼아 정치 무대로 뛰어들까 걱정이다. 입만 열면 용서와 사과를 구하는 전재용부터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분노와 독설을 쏟아내는 김현철까지 우리는 전직 대통령 일가의 비루한 입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다. 그 비루한 어록에 한줄 더하는 부끄러운 아들이 또 하나 등장하는 것 같아 영 뒷맛이 개운치 않은 오월 어느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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