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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는 친구들 별명을 참 단순하게 지어 붙였던 것 같다. 이름 가운데 옥자가 들어간 친구는 예쁘건 안 예쁘건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가 되었고, 명자가 들어간 친구는 여지없이 명태가 되었다.
 그 중에는 독특한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얼마 전에 만난 친구 선옥이다.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났다. 선옥이와 약속한 카페에 앉아 있는데 문득 별명이 떠올랐다. 선옥이의 별명은 공동묘지였다. 


 알파벳 v자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긴 길 양 끝에 학교와 집이 있었는데 선옥이의 집은 그 가운데 즈음 있었다. 그래서 별명이 공동묘지가 되었다. 우리는 선옥이 허락도 없이 그렇게 불렀다.
 학교가 우리 집보다는 가까워서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대문도 없고 비가 많이 오면 산사태가 곧잘 나는 선옥이 집이 부럽기만 했다. 헉헉거리며 공동묘지 길로 절반쯤 오르면 선옥이가 여유 있게 합류했고, 꼭대기에서 절반쯤 내려와 집이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저 곳까지 언제쯤 닿을까 한숨지을 때 선옥이는 냉큼 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학교 다닐 적에 가장 부러웠던 친구가 학교 바로 앞 마을에 사는 친구였는데 그런 친구의 집은 아예 그림의 떡이어서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내 눈 앞에서 내 발걸음의 양과 비교되는 선옥이의 집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동묘지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맨 먼저 우리가 학교 다니던 그 길이 이직도 있냐고 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그 길을 걸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옥이도 마찬가지라고 했지만 길은 아직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도 있을 거라고 했다. 길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 리가 있겠냐면서.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 마을에 빨간 버스가 개통되었다. 하루아침에 그 길을 다니는 인적이 끊겼다. 곧 풀과 나무로 뒤덮여서 형체가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길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길은 아직 있을 것이다. 길은 깊은 잠을 자고 있을 거라고 나는 동화작가답게 생각하고 혼자 웃었다. 그 길이 수많은 추억을 주었으므로 그 길을 세월 속에 빼앗기 싫었기 때문이다.
 6년 동안 그 길을 걸어 다녔다. 날마다 돌길을 걸어 가파른 고개를 넘고 무성한 잡풀을 헤치고 다녔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갈 채비를 하다 보면 오늘은 무슨 즐거운 일이 있을까 라기보다는 아, 오늘도 저 언덕을 어떻게 넘지? 어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침에 정성껏 손질한 교복을 입고 나서면 금세 모양이 흐트러졌다. 땀에 젖거나 비에 젖거나 흙탕물에 젖었고, 종아리에는 튀어 오른 풀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런 데다 학교로 가는 언덕 주변이 공공묘지라서 늦은 밤 자율 학습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귀신이 나올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짓궂은 남학생이 온몸에 두루마리 휴지를 감고 나타나 미라 흉내를 낼 때도 있었고, 뱀을 잡아 길에 던져놓아 까무러치게 한 적도 있다. 그것을 보고 놀라 기절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길에 불편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길 위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모두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길 위에는 계절마다 다른 추억이 조롱조롱 오동꽃처럼 달려 있다고 말할 수밖에.
 배 밭에서 서리를 한 것은 기본이고, 뽕 나무 밭에서는 입술이 보라색으로 변할 때까지 오디를 따 먹었다. 밤나무 밭에서 밤을 몰래 따 들고 모여 생밤을 이가 아프도록 까먹은 적도 있고, 빈 도시락에 작고 앙증맞은 뱀딸기를 따 모아 씹어 먹으며 지루한 길을 걸어 집으로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우리를 더 즐겁게 해 준 것은 길가에 피어나는 꽃과 나무와 풀들이었다. 큰 나무에서 작은 나무까지 피는 꽃들은 시기가 다르고 향이 다르고 떨어지는 성질도 달랐는데 그런 것을 보고 다니는 나날이 새로웠다.
 6월초에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는데 산비둘기가 탁한 소리를 내며 목청껏 울었다. 아카시아 나무가 우거진 그곳에는 너무 진한 향기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물론 겨울에는 볼 것이 없었다. 황량한 벌판에 바람이 불면 춥고 길은 더 멀어보였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보다 봄을 더 빨리 만나고 여름은 더 더웠지만 내가 만나는  그늘은 더 넓고 진했다.


 그것이 내가 그 길을 잊지 못하는 이유다.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은 저만치 멀어져 가물가물하고, 계절 속에 살아있던 아름다운 기억은 날이 갈수록 선명해진다. 그 길에 서고 싶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에서 지친 내 두 발을 그 길에 포개어 보고 싶다. 지금쯤 오디가 한창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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