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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로병사는 우리가 어쩌지 못할 진리다. 태어나 나이들고 병들어 죽는 일은 우리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안타까운 숙명이란 것이다.  울산 대표로 출전한 극단 세소래의 전국 연극제 첫 경연작 '아무것도 하지 마라'를 보면 우리 삶의 노후를 쓸쓸히 반추해 볼 수 있다.  30여 년을 넘게 군 공무원으로 생활하다 퇴역하고 연금으로 노후를 생활하는 가족들의 일상의 이야기들을 보면 그 주제를 엿볼 수 있다.

 1년 뒤 만약 공무원들의 노후 연금이 사라지는 제도 아래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좌충우돌의 가족사를 연극 '아무것도 하지 마라'에서는 다루고 있다. 30여 년동안 군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자식 셋을 낳고 대령으로 예편해 퇴직한 주인공 황재화(극중 정재화 분)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아내는(극중 김수미 분) 남편의 가부장적이고 군대생활이 가정 내에서도 철저하게 길들여진 규칙 위주의 일상에 주눅이 들어있는 캐릭터다. 첫째·둘째 딸과 사위도 마찬가지로 그동안 아버지와 장인에게 잔뜩 군기가 잡혀진 일상을 살아왔다.

 이 가족들이 겪는 일상은 그야말로 가족 내부의 정체성은 없는 성격 구축으로 스트레스 가운데 살아온 세월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시한부 인생을 판정받고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난다. 가족들은 만세를 부르며 내심 환영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되돌아 오지 않는 남편과 아버지를 기다리며 애가 탄다. 그러나 그 애가 타는 속사정의 기저엔 연금을 계속해 수령받지 못하는 것에서 겪게 될 생활의 곤란함이 더 큰 고민으로 내재되어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진 결함으로 스스로는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이 딜레마는 아버지의 연금에만 의지하고 있다. 이를 미리 알고있는 아버지는 홀로 조용히 죽음을 맞이 하며 마지막 유언장을 가족들에게 보낸다.

 자신이 무연고 사망자로 사라져야만 가족들에게 계속해 연금이 지급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을 찾지도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며 쓸쓸히 죽어가는 모습이 우리 아버지들의 뒷모습과 닮아있다. 가족들은 오열하지만 어쩌지 못할 현실은 가슴 먹먹해져 오는 슬픔과 연민을 남기며 막이 내린다.

 오늘날 가정 내에 가부장적인 권위가 사라진지 오래인 것만 같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존재 의미는 날이 갈수록 퇴색되어 가는 것만 같다. 존경하기에는 불만이 있고 사랑하기에는 두려움이 있는 존재가 아버지다. 그래서 극 말미에 아버지의 마지막 독백은 이 가부장적인 권위가 사라진 사회상을 향해 경종을 울려 주는 듯한 충격을 안겨 준 작품이었다.

    박태환 작·연출의 이 작품은 울산 연극제 경연에서 대상을 받고 전국 연극제에 울산 대표로 참가한 만큼 탄탄한 극적 구성과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돋보였다.  마침 필자가 관람한 오후 4시 공연엔 학성여중생들이 단체 관람을 와서 객석을 가득 메웠다. 공연 후 훌쩍이는 여학생들을 보며 가족 구성원 간의 잊혀져가는 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할만한 작품이였으리라 생각하니 뿌듯했다.

 연극의 구성 가운데 관객은 필수 조건이다. 무대의 제 4면을 열어 놓으면 객석의 관객들이 앉아 있다. 객석의 관객들은 그래서 간접적으로 연극에 참여하는 배우와도 같다. 또한 무대위 배우들이 펼치는 삶의 희노애락을 바라보며 공감과 감동을 하기에 직접 참여하는 배우와도 같다. 또한 연극 예술은 인간의 역사와 시대를 반영해 온 거울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 삶의 여정들이 고스란히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연극 예술은 우리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무대위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전국 연극제가 오는 20일까지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펼쳐진다. 15개 도시에서 참가한 연극인들이 울산에 모여 경연을 펼친다. 지난 1일 개막 공연부터 객석을 가득 메운채 시작한 울산 전국 연극제의 열기가 뜨겁다. 꽃향기 날리던 축제의 계절 5월이 아쉽게도 지나자 마자 개최된 연극 축제이기에 더욱 반갑다. 인간 역사의 태동 때부터 함께 진화해 온 전국 연극 예술 축제에 울산 시민 모두가 응원과 관람으로 함께 축제를 즐겨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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