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벨기에 영화감독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이란 영화를 보았다.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던 '자전거 탄 소년'을 볼 때는 사실 큰 감흥이 없었는데, 이 영화는 울림이 남다르다. 아마 일자리를 찾으려 하는 주인공의 처지가 강사라는, 비정규직인 내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 공감을 하며 본 것 같다.

 병이 나아서 복직을 앞두고 있던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에게  친한 동료가 전화를 걸어 산드라의 복직과 직원들의 보너스를 두고 투표를 했는데 대다수 동료들이 보너스를 택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얼마 뒤 그 투표는 반장이 직원들을 위협해 이루어진 것이라 무효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산드라는 사장을 설득해 재투표의 약속을 받아낸다. 그리고 주말을 이용해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보너스 대신 자신의 복직 쪽으로 투표를 해달라고 설득을 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트릭이나 반전이 없이 밋밋하지만 동료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관객들의 감정선도 산드라의 희망과 좌절을 따라간다. 물론 동료 대신 보너스를 택한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직원도 있지만, 등록금 때문에, 전기세 때문에, 필요한 가구를 들여놓기 위해 등등의 이유로 보너스를 택하는 사람도 많다.

 선택을 종용하는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돌아보게 된다. 나라면 산드라의 복직과 1,000 유로라는, 노동자에겐 적지 않은 보너스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까. 혹은 내가 산드라와 같은 입장이라면 동료들을 설득하기 위해 굴욕적인 느낌을 억누르고 온종일 뛰어다닐까, 아니면 상대의 반응에 좌절하여 그대로 주저앉을까.

 내게 이 영화는 매우 정치적인 영화로 읽힌다. 물론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이 실업과 이민, 모성 문제 등 이웃과 사회의 희망과 절망을 담담하게 풀어내는데 능하긴 하지만, 그 사이로 정치란 이런 것이다 라는 방향성과 묘미를 보여준다. 우선 사장의 경우를 보자. 사장은 불황으로 인해 한 명의 직원이 필요 없어지자, 자신의 손으로 해고를 하는 대신 동료의 복직과 보너스 사이에 선택을 하게 하여 직원들 사이를 이간질 한다. 그리고 흩어진 분위기를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계약직을 재계약하는 대신 그 자리를 산드라에게 주겠다고 제안한다. 근로자들의 단결과 협동을 깨뜨리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사장은 우리가 흔히 정치를 잘해야 살아남는다, 혹은 사내 정치니 인사 정치니 라고 말할 때의 부정적인 의미의 정치에 능하다. 그것은 직원들끼리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게 하며, 그 책임을 산드라라고 하는 희생양에게 돌리는 비열한 정치이다.

 산드라는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직원들이 동료의 복직과 보너스 사이에서 도덕적인 딜레마를 느꼈다면, 산드라는 동료들의 불편한 시선과 자신이 동료들의 경제적 이득을 빼앗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괴로움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포기할 것인가, 계속 할 것인가. 주저앉을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산드라는 여러 차례 좌절하고 그만두려하지만 남편은 그때마다 산드라를 부추겨 결국 모든 동료들을 만나고, 자기편이 되어달라고 설득을 한다. 위협이나 구걸이 아닌 설득. 산드라는 도와줄 수 없다는 동료들의 입장을 수용하기도 하고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도 하며 차츰 지지자들을 모아간다. 그리고 재투표 결과 양측은 같은 수로 팽팽히 맞선다.

 투표야말로 민주주의의 꽃이 아닌가. 투표는 일반 시민들이 자신의 힘을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요즘 갑을 논란이 한창인데, 투표장에서야말로 투표권이 있는 시민이 갑이다. 거기서 우리는 당당하게 어깨를 펼 수 있다. 그리고 투표의 결과는 겸허히 수용한다. 산드라 역시 동료의 뜻에 따라 회사를 나온다. 계약직을 내보내고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사장의 제안도 거절하고서. 계약직 직원이 재계약이 안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편에 서 주었고, 자신의 복직이 다른 직원의 해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산드라가 사장이 제안한 복직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받아들인다면 그동안 산드라의 노력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또다른 산드라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산드라는 복직에 실패했고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동부서주 해야 한다. 하지만 산드라는 달라졌다. 우울증을 앓던 소심한 직원에서 당당하고 떳떳한 개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사장과 반장의 부당한 압력과 회유를 뿌리치고, 또 직접 동료를 만나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바람과 용기, 동료애 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산드라가 보낸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던 주말의 시간들, 동료들을 직접 만나 악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연대의식을 확인한 그 시간들이 바로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그래서 산드라는 "지금 나는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