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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의 흥망성쇠는 돌고 또 돌며 반복돼 왔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 또한 언제나 쳇바퀴 돌듯 돈다. 아버지 때 부흥의 시대가 자식 때는 망해가는 시대의 쓸모없는 유산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후세엔 다시 부흥의 유산물로 재탄생되기도 하는 것이 알 수 없는 인간사 흥망성쇠의 역사다. 한 가족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부모 세대의 아픈 흔적들은 지우려 발버둥 친다. 자식대에까지는 물려 주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절박하고 절실한 심정이 바로 부모 세대의 진심이다. 지난주 전국연극제의 충북 대표팀으로 출전한 극단 청년극장의 연극 '부흥다방'(공동창작·연출 정창석)을 보면 그 인간사와 닮은 흥망성쇠 가족사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다.

 극중 부흥다방 사장 병수(정우영 분)와 중국집 배달부 동식(조재명 분)은 고아로 자라온 세월의 아픔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이들의 동질감어린 애착은 남다르다. 어느날 이들에게 의문남이 찾아오면서 극은 활기를 뛰다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 하더니 곧 인간 세속사의 어두운 욕망과 피비린내나는 과거사들이 드러나게 된다. 장성(길창규 분)은 은닉해 온 모든 재산들을 부흥사 금불상 제작으로 위장해 더 큰 야망을 불태우려 음모를 꾸민다. 반대로 그 금불상을 가짜로 바꿔치기하려는 일에 친아버지인 것을 속이며 아들 병수를 끌어들인 비정한 아비와의 쫓고 쫓기는 갈등 구조가 이어진다.

    결국 이 일에 함께 가담한 아버지와 아들은 부흥사를 불태우게 되고 살인을 저지르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야망을 불태우려 물질에 집착하며 폭력을 일삼던 장성은 부하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이 장면은 과거 군부 독재정권의 종말을 패러디한 연출 의도가 숨어있는 듯 했다. 병수는 쫓기다가 시골 한적한 곳에 부흥다방을 열고 은둔 중이다. 아버지는 아들 병수에게 마지막 고해를 하기 위해 찾아 온다. 하지만 이들을 뒤쫓던 의문남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고 이들 역시 서로에게 총을 겨누며 부흥다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 병수에게만은 아비로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실체만은 끝까지 숨겨 달라며 동식에게 울부짖으며 죽어간다.

 인간의 헛된 욕망과 야망의 끝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돼 있다. 피는 피를 부르고 그 파국은 죽음이다. 연극 '부흥다방'은 오늘날 도덕성과 인간성이 무너져가며 물질 만능주의에 천착하는 우리네 삶의 현실에 총성을 울려 주고 있다. 서로를 향해 들이대는 총구는 결코 부흥스럽지가 않다. 또한 욕망으로 얼룩진 인간성의 상실은 이들 부자간에 비극을 낳으며 되물려 주고 싶지 않은 가족사의 흔적을 남기고야 말았다. 비극적 결말이 우리에게 불쾌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 비극성이 지닌 정서적 결함 때문이다. 인류의 욕망으로부터 빚어진 흥망성쇠의 역사가 가족사에서까지 더 이상 재현되지 않길 바라며 본 연극 '부흥다방'이었다.

 1985년에 창단한 충북 대표 극단 청년극장은 오랜 세월 공동창작이라는 극 작업 형태를 취해 온 독특한 극단이다. 연극은 배우 예술이란 말이 있다. 다양한 개성과 역량을 지닌 배우들이 공동으로 극을 창작해 간다는 것은 연극의 꽃과 같은 역할을 해낸다. 하지만 공동 창작이 갖는 단점은 다소 여러 욕심을 부린 듯한 극의 복선 구성이 작품의 주제를 흐리게 할 만큼 산만하게 불거져 있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경연작에서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지만 이를 잘 직조된 연출 구성으로 극복해 낸 연극 '부흥다방'의 건승을 빈다.

 울산에서 19일까지 이어지는 전국연극제의 열기가 날이 갈수록 뜨겁다. 반갑지 않은 손님인 메르스의 긴장에도 아랑곳 없이 지난 1일 개막 후 9일만에 1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더구나 홈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경연인만큼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이 더 증폭되는 것 같다. 저녁 공연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바로 이어지는 울산문예회관 광장의 특별무대에서의 축하 공연들도 다채롭게 준비돼 있다. 이 뜨거운 열기가 폐막 때까지 계속해 이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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