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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이와는 중·고등학교를 통틀어 4년 동안 짝꿍을 했다. 시골에서 살다보니 초중고를 나란히 같은 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도 그랬다. 명숙이 동네는 명촌, 내 동네는 못안. 당시에는 둘 다 고향 상북면의 대표 깡촌이었다. 우리는 그 먼 거리에 놓인 서로의 집을 오가며, 밥을 먹고 서로의 가족과도 사겼다. 마치 야시마 타로가 쓴 일본동화 '까마귀 소년'에 나오는 까마동이처럼 까맣게 얼굴을 태운 채 타박타박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싱겁게 헤어지고 말았다. 마치 6월의 살구나무가 다 익은 살구를 언제까지나 가지에 달고 있을 수 없듯 우리는 생에 처음으로 헤어질 때를 맞게 됐다. 우리의 우정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아프지도 않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안부도 모른 채 지내다가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명숙이는 벌써 아기 엄마가 돼 있었다. 결혼식장에 아기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지만 명숙이는 오지 않았다. 그것으로 연락이 끊겼다.

 안부를 모른 채 몇 년을 살다가 최근에 또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명숙이는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 때 그 아기가 대학생이 됐다고 했다. 명숙이의 무한 애정 공세가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다. 며칠 전 만든 딸기잼을 갖다 주겠다, 먹고 싶은 건 없느냐? 밑반찬은 얼마나 있느냐? 마치 나를 막내 동생 다루듯 하며 챙기려 들었다. 나는 언니가 넷이다. 한없이 받기만 하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동생 취급 받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너나 잘 먹어. 나도 있어. 아니야 됐어. 사양에 사양을 더하다가 지난 일요일에 명숙이의 끈질긴 구애에 그만 두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내가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는데도 아파트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지 좀 마. 니 마음 알아. 하지만 명숙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나한테 뭘 그렇게 주고 싶어? 이상한 질문 같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넌 내게 특별한 친구니까"하면서 명숙이가 이야기 한 자락을 꺼냈다.

 학교를 졸업하고 수많은 친구를 사귀고 만나고 밥을 먹고 떠들다 보니 문득 알겠더란다. 나처럼 자신에게 잘 해 준 친구가 없더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나를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게 하는 것은 내가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싸오던 열무김치란다. 그 열무김치 맛을 잊을 수가 없고 내가 더불어 그립더라는 것이다. 참 웃긴다. 시어 빠진 열무김치에 참기름과 된장을 섞어 낸 소박했던 시절의 맛은 그렇다 쳐도, 내가 저에게 그렇게 잘 해준 친구였다는 말은 민망하기보다는 거짓말 같다.

 그냥 놀았던 기억뿐인데, 그냥 있는 대로 보여주고 느낀 대로 말했을 뿐인데…. 그리고 내가 저에게 잘해주었다는 말은 틀렸다. 나는 욕심이 많았고 명숙이는 인정이 넘쳤다. 나는 여우짓을 많이 했고 명숙이는 나를 너무 믿었다. 작은 일이든, 작은 것이든. 그래서 무엇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하는 건 내 쪽이다. 입던 옷을 대충 갈아입고 나가니 '조야'하고 저 멀리서 부른다. 차 안으로 몸을 구부려 이것저것 꺼내더니 불쑥 내민다. 직접 바느질해서 만든 열쇠고리와 산딸기 한 박스. 그리고 집에서 막 입으라지만 그러기엔 너무 고운 장미넝쿨 빛깔 티셔츠 한 장이다. 그리고는 급한 일이 있어 가야 한다며 차를 돌리더니 다시 창문을 열어 산딸기 씻는 방법을 설명한다. 더운 6월에 느닷없이 산타클로스를 만난 듯, 앞섶에 수북한 선물을 안고 돌아서니 기분이 묘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씻지 않은 산딸기를 몇 개 꺼내 먹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나를 기억하고 있는 명숙이의 말이, 어느 날 깊숙한 서랍에서 찾은 인감도장에 입김을 훅 불어 넣고 찍어보니 붉은 인주로 아슬아슬 내 이름이 찍히듯 지난 시절이 아련하고, 기쁘고, 고맙다. 추억이라는 것은, 우정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게 아니었구나. 흙 속에 재워둔 씨앗처럼 언제든 새로이 발아할 수 있는 싹이었구나. 앙증맞은 꽃 모자 같은 산딸기와 눈을 두고 있으니 문득 나를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거듭거듭 일면서 부끄러웠다.세월이 지나면 사람들은 준 것보다 받은 것을 더 생각하게 되는 모양이다. 내가 주지 않으면 상대가 받지 못하니 주는 것이 지극히 큰 사랑이라는 말을 새삼 알겠다. 이 모든 것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알게 되니 시간이라는 녀석 참 착하다. 밥 먹자는 전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먼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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