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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2002년 6월 29일 종편이 난리가 났다. 공중파는 월드컵 중계로 한창인 시간, 종편들은 일제히 '연평해전'을 특집으로 실시간 중계했다. 물론 상상이다. 13년 전 종편채널은 있지도 않았고 준비도 안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잠시, 상상해보자. 그 때 종편이 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연예인 한 사람이 도박으로 물의를 빚자 하루 종일 토론 주제를 이어가는 종편이니 '연평해전' 정도는 못해도 3일짜리 아이템은 될 듯 싶다.

 종편 A가 포문을 열었다. 보도채널들이 국방부발 보도와 인근 주민, 상황실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다루고 있는 시간, 발빠른 종편 A는 국방대학원 교수, 전직 외교관 대학 교수 등을 불러 토론을 시작했다. 종편 B도 바빠졌다. 그래픽 부서는 전투상황도 제작에, 작가·PD는 토론자 섭외로 휴대폰을 붙잡고 있다. '노크귀순'으로 종일 국방부를 깐 덕에 비판적 종편으로 주가를 올린 종편 C는 신이 났다. 도무지 모르는 게 없는 정치평론가 무명씨와 대중문화평론가 길동씨는 이미 대기실에서 분장을 마쳤다. 대기실 화면에 종편 A에서 시작한 긴급토론 자막이 올랐다.

    김대중 정부의 수세적 교전수칙 때문에 희생자가 많았다는 이야기와 정부의 미흡한 대응, 대북 유화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국방대학원 교수의 말에 전직 외교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죠, 월드컵으로 국가 이미지가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 전쟁 분위기로 만들면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한 거로 봅니다. 아, 네…. 우라질, 빨간 이미지가 전직 외교관의 입술을 덧칠했다. 방송을 보던 대중문화평론가 길동씨가 씩 웃으며 스튜디오로 걸어갔다. 대충 분위기는 띄워졌고 좌빨평론을 한바탕 흐드러지게 주절댈 차례다. 대충 논점이 그려졌다. 마침 보수논객 무명씨가 김대중 정부를 흠씬 두들겼다.

 사회자가 발언권을 주자 팔방미인 길동씨는 재빨리 도발적인 단어부터 뱉었다. 사망한 장병은 국민을 대신해 총알을 온몸으로 받아낸 겁니다. 먼저 애도를 표합니다. 하지만 햇볕정책 때문에 이같은 일이 벌어졌거나 교전수칙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우리는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월드컵을 통해 전 세계 이목이 집중돼 있지 않습니까. 우리 태극전사들이 뜻밖의 선전으로 성공적인 월드컵을 마무리하는 시점인데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강력하고 단호한 대처로 한반도를 국제적 불안지대로 알리는 것은 득이 되지 않습니다.

    보수골통 무명씨의 얼굴이 붉어지고 눈빛이 반짝거린다. 그게 말이 됩니까. 대통령이 내일 아침에 일본으로 간다니요. 월드컵 결승전이 국가 이미지입니까. 자국의 군인이 전사한 상황에서 불안정한 정국을 숨기기 위해 대통령이 일왕과 파안대소를 하고 박수를 치는 장면을 연출해야 하나요. 객관적으로 보세요. 모든 사실을 세계인들이 알게되면 대한민국은 한심한 나라라고 질타를 당할 겁니다. 몇 년 전 1차 연평해전 직후 우리가 승리했는데도 승리한 장수를 한직으로 밀어내 군복을 벗게한 게 누굽니까.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 명으로 적이 영토를 침범해도 발포 하지 못하고 적의 발포 전까지는 선체로 밀라는 말도 안되는 교전규칙을 그대로 방치한 게 누굽니까. 햇볕요? 그 햇볕으로 수 조 원의 자금을 북한 정권에 넘겨 군사력을 키우게 해준게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웃통 벗고 싸울 기세다.

 상상은 이어지지만 이쯤하고 현실로 돌아오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제2 연평해전에 대한 평가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논란을 불렀다. "(제2 연평해전이 벌어지고 해군이 사망한)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단호한 대응과 응징을 하면서도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해전에서 승리하고 우리가 개최한 월드컵도 무사히 마쳤습니다."라고 썼다.

    제2 연평해전이 발생하기 이틀 전인 2002년 6월 27일 대북감청부대장인 한철용 소장은 북의 도발 징후가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한 소장은 "군 수뇌부가 (보고를) 묵살했다"며 "우리가 충분히 제2 연평해전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이런 실상을 공개했다가 보직해임 됐다. 제2 연평해전이 벌어진 다음 날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월드컵 결승전 참관차 일본으로 떠났다. 다음 날인 7월 1일 제2 연평해전 전사자 장례식이 열렸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이한동 국무총리, 김동신 국방부 장관, 이남신 합참의장 등은 장례식에 불참했다.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제2 연평해전은 서해교전으로 불리다 이명박 정부에서야 제2 연평해전으로 개칭됐다.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들끓던 때 북한이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에 포격을 퍼부어 대한민국 군인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잊혀진 비극이 13년 뒤 영화로 부활했다. 최단시간 200만 돌파로 관객이 몰리고 있지만 매일같이 종편에서 온갖 이슈를 백과사전처럼 풀어놓는 대중문화평론가 길동씨는 침묵하고 있다. 우리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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