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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푹푹 찐다. 볕이 이글이글 가마솥더위로 달아오른다. 가뭄이 든 텃밭에는 한창 수내기를 키우고 열매를 달아야 할 옥수숫대와 오이, 고구마 순이 새들새들 숨을 할딱거린다. 이럴 땐 잠시 지나가는 비라도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졌으면 좋으련만.
 가물어 터진 칠월 염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농사를 짓는 이나 농작물이나 다 같이 진이 빠진다. 이럴 때는 나름대로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 있어야 수월하게 여름한철을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되면 시원한 나라를 찾아 휴가를 즐기다 오면 좋겠지만, 우리네 살림살이가 고만고만하니 그림의 떡 일 뿐이다. 그렇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몸과 정신을 더위에다 통째로 풍덩 담그는 것도 한 방법일 성 싶다.

 수해 째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라 했으니 규모가 클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집 근처 교회 담벼락에 붙은 어중간한 한 뙈기의 집터에 불과하다. 이 땅의 실제 주인은 먼 도시에 살면서 투자로 사 놓은 것을 그간 운 좋게 내가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땅이든 물건이든 문서 상 주인은 별 의미가 없다. 실제로 가까이서 공을 들이고 사용하는 쪽에 더 의미를 둔다.
 사람도 그렇다. 호적상 '가족'으로 올려져있다고 다가 아니다. 일 년을 두고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관계라면 '이웃사촌'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수해 째 흙에 거름을 줘가며 땅을 일구고 적당히 소출을 얻고 있는 내가 사실상 주인이다. 대지는 대지, 자연은 자연인 것이지 인간의 것은 아니다. 저 땅이, 저 산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 위주의 오만한 생각일 뿐이다.
 멍석만 한 텃밭농사도 하늘의 도움 없이는 헛방이다.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가뭄이, 장마가, 태풍이, 병충해가 들면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지 못한다. 낮에는 햇빛과 바람이 수시로 드나들고, 밤이면 별빛이, 새벽엔 눈썹달이 내려와 은은하게 스밀 때 양질의 먹을거리를 얻는다. 농부의 손길은 나중이다.
 요즈음 같은 여름철에는 밭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손수레에 물통을 잔뜩 싣고 찾아간 밭에는 새들새들 타들어가던 푸성귀가 일제히 나를 향해 '야, 주인이다!'라고 외친다. 일일이 목을 축여주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뿌듯하고 편안할 수가 없다. 한창 열리기 시작하는 고추에는 지지대를 거들고, 축 늘어진 오이순에 끈을 매어준다. 주먹만 한 애호박 엉덩이에 방석을 깔아주느라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면서도  덥지만은 않다. 좋아하는 일에 정신을 팔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것만치 아름다운 작업도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장난감에 정신을 팔고 놀듯이, 밭 일는 자연과 삶을 동시에 배우는 교실이자 내 놀이터다.
 밭에는 절기에 맞춰 씨앗을 파종하지만, 그때그때 종묘상에 들러 전문가가 키운 모종을 입양한다. 밭작물은 뿌리를 내리고 바람과 물, 햇빛으로부터 골고루 영양을 받고 나서 받은 그 이상으로 결과물을 되돌려준다. 나는 자라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만큼 삶이 성숙해지고 풍요로워진다. 농사는 자연을 알고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과정으로 여겨야지 장삿속으로 따진다면 절대 계산이 안 나오는 장사다.
 모처럼 아침방송에서 낮부터 비 소식을 전했다. 말간 하늘에 무슨 비가 올까 싶은데 신기할 정도로 돌연 비 올 징조가 완연하다.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가리더니 주변이 어둑어둑해진다.
 우선 비바람이 일면 옥수숫대가 바람을 받으며 '서걱서걱' 온몸을 비빈다. 비 소식을 알아차리고 시퍼런 이파리를 비비면서 내는 이 소리. 이는 영락없이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전주곡이다. 나는 이 소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쩌면 이 소리를 듣기 위해 해마다 옥수수를 고집하는지도 모른다.

 '후두두' 빗소리가 요란하다.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땅에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그것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 마음과 다르지 않다. 마치 세상의 평화가 시작된 것처럼 편안해지고 머릿속은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상추며 쑥갓들이 쑥쑥 크겠구나, 옥수수가 알이 굵어지겠구나.' 싶어 안도의 숨을 내쉰다.
 빗소리에 귀를 던져두고 거실바닥에 벌러덩 누워 쉬는 것만치 달콤한 휴식도 없다. 이때 나는 유난히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고 잠자던 감성이 날갯짓을 한다. 일손을 놓고 한갓지게 즐기는 달콤한 휴식, 이보다 더 여유로운 피서가 또 있으랴.
 빗소리는 낮과 야밤에 들을 때 하고 그 느낌이 판이하다. 낮잠을 청하며 듣는 빗소리는 편안하고 달콤하고 행복하지만, 늦은 밤 잠결에서는 귀보다 가슴으로 듣는다. 마치 빗줄기 소리가 어떤 개인사를 귓속말로 들려주는 것처럼 내 안으로 조심스럽게 속삭이며 다가오는 느낌이다.
 더위를 씻고 지나가는 비는 온갖 잠든 숲과 농사를 거드는 신의 손길이다. 한바탕 빗소리가 지나고 나면 한결 성숙되고 맑은 세상이 펼쳐진다. 다시 피어나는 신록의 향기와 푸성귀의 싱그러운 기운이 내 삶에 생기를 더한다.
 오늘도 나는 더위를 데리고 텃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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