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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지난 15일 문을 연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가 딱 그 짝이다. 6개월을 기다려 잔뜩 기대했는데 이날 센터 출범식에서 공개된 특화산업은 "낯설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울산형 창조경제 핵심프로젝트로 제시된 4개 아이템 중 '조선해양플랜트'가 없다면 이것들이 과연 울산의 것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다. 현대중공업의 앞선 산업로봇 기술과 접목한다지만 '첨단 의료자동화 신산업'은 울산이 잘하는 게 아니다. 난데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역특화 3D프린팅 산업'도 울산의 미래 먹거리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울산혁신센터와 민간 창업보육기관 간 플랫폼 연계'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소식 축사에서 "울산혁신센터가 울산과 대한민국 제조업의 혁신을 이끄는 산실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하지만 울산센터의 핵심프로젝트에는 지역 주력업종인 자동차, 석유화학은 물론 수소산업·이차전지, 신소재, 에너지 등 울산의 간판 업종은 거의 전부 빠졌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지난 50년간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한 산업수도 울산을 이렇게도 홀대해도 되느냐는 푸념까지 나온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울산혁신센터 개소에 대한 지역 산업계 반응도 시큰둥하다. 업계는 대내외 악재 속에 유례 없는 주력산업의 동반침체를 겪는 상황에서 혁신센터 개소가 위기 극복의 계기가 될 것으로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울산 특화산업 선정에서 업계나 시장 경제논리는 도외시 됐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고도화가 시급한 지역업계 입장에선 개소식에서 공개된 주요 프로젝트는 '그림의 떡'이다. 지역 여건에 맞는 특화산업을 육성한다더니 빈말이었다. 조선해양을 제외한 자동차·석유화학은 적어도 울산형 창조경제에선 찬밥신세가 된 셈이다.

 울산의 창조경제 핵심 프로젝트가 이처럼 지역의 주력산업과 동떨어진 것들로 채워진 데는 울산시의 미온적 대처가 일차적 원인이지만 정부의 잘못된 교통정리 탓이 크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사업이다 보니 정부부처가 일일이 간섭했다. 전국 17개 시·도 창조경제혁신센터의 핵심 아이템을 만드는 일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 각 시·도 센터에 하나씩 붙여준 대기업 매칭도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산자원부가 도맡았다. 창조경제센터를 지역 혁신의 거점으로 삼아 특화산업 선정은 지역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정부가 주도한 셈이다. 이건 '관치의 극치'다. '창조경제'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사실 창조경제혁신센터 핵심 아이템 선정은 올 1월 광주에 '수소자동차'를 배정할 때부터 미덥지 않았다. 울산은 세계 최대 수소타운이 있고 세계 최초로 수소차를 양산한 곳이다. 이런 울산의 입장에선 광주에 수소차 산업을 뺏긴 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러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만들고도 무기력한 정부의 간섭으로 일본에 추월당하고 중국에 밀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2013년 4월 울산공장에서 세계 최초의 수소차인 '투싼ix'를 양산·판매를 시작했다. 일본의 도요타보다는 1년10개월이 앞선 쾌거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의 세계시장 판매대수는 도요타가 1,500대에 이른데 비해 현대차는 273대에 그쳤다. 일본은 현재 40개인 수소충전소를 2020년까지 2,000개로 늘릴 계획이지만, 충전소 10개를 가진 우리나라는 구제적인 계획도 없다. 전기차는 중국에 압도당한지 오래다. 중국은 올 5월까지 2만 5,800대의 전기차를 생산한 반면, 국내에선 4월까지 1,155대가 전부다.

 미래 먹거리 수소·전기차 산업을 정부가 선심 쓰듯 이리저리 갈라주는 사이 경쟁상대인 일본·중국은 괘속질주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인프라를 가진 울산을 두고 정부가 수소차 산업을 광주에 주자 충남도에 이어 창원까지 수소차 허브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정말 큰일이다. 이래서는 답이 없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빚은 해프닝이라 하기엔 사안이 너무 중대하다. 우리 산업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박근혜표 경제브랜드인 '창조경제혁신센터'의 미래도 그렇게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전국의 혁신센터가 본격 가동된 지 이제 반년인데 벌써 부작용을 걱정하는 소리가 새고 있다. 대구는 혁신센터가 아니라 삼성센터라는 비판이고 경북·경기·부산 등지에선 개점휴업이니 애물단지니, 보여주기 성과에 치중한다는 등의 잡음이 무성하다. 펀드도 유사사업 예산을 끼워넣은 뻥튀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도 참여정부의 '혁신경제'나 이명박정부의 '녹색경제'처럼 정권이 바뀌면 자동폐기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답은 하나다. 창조경제는 기업에 맡기고 정부는 뒤로 물러나는 일이다. 정부의 잘못된 선택에 우리 기업들이 빨려 들어가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함께 묻힐 거라는 우려는 생각도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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