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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

 요즘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이 단어는 칠레 남부 티에라델푸에고 지역 야갼족 원주민이 쓰는 명사다. 세계에서 가장 뜻이 긴 단어,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간명한 단어이자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로 1993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고 한다. 풀이하자면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해 해주기를 바라면서 두 사람 사이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이라고 한다.

 미묘한 눈빛이라면, 이 단어의 용례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마밀라피나타파이가 오갔다'가 되겠다.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라더니, 우리말로 '눈치를 보다' 정도에 해당하겠지만 딱 맞는 낱말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상황인지는 대강 그려볼 수 있다. 유명 인사 초청 강연 후 질문 시간에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물론 대개는 질문자를 미리 선정하겠지만 혹시 즉석 질문시간이 주어졌는데 누구도 나서지 않으면 그 침묵은 매우 어색하고 불편하다. 아니면 어려운 상사의 얼굴이나 옷에 무언가 묻었을 때 지적해주기.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몸을 사리면서도 누군가 나서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눈치를 보게 된다. 마밀라피나타파이.

 이런 상황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겠다. 우선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음으로써 그 상태로 상황이 종료되는 경우. 아까 강의실에서 질문자를 찾을때 아무도 손을 안 드는 경우다. 이 때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 '그럼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수고해주신 강사분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하고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급하거나 긴요하지 않을 때 일 테고, 정말 꼭 필요하다면 성질 급한 사람이 먼저 움직이게 마련이다. 물론 이때는 구성원의 서열이 비슷해야 한다. 조별과제의 조장을 뽑거나, 밖은 오지게 추운데 무언가를 사러가야 할 때, 감정의 동요가 커서 침묵과 불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결국 엉덩이를 들게 된다. 하지만 서열이 조금이라도 나뉘면 상황은 달라진다. 막내의 솔선수범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눈치껏 커피도 타고, 피피티도 만들어야 한다. 귀찮은 외판원을 내보내는 일도 막내의 몫이다.

 그런데 한 번 마밀라피나타파이, 그러니까 일종의 눈치게임에서 지고(?) 나면 상황은 진 사람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한번 해봤으니까, 솜씨 좋더구먼, 일 잘하던데 하고 추켜세우면서 은근슬쩍 일을 떠넘긴다. 이른바 호구가 되는 것이다. 호구가 되기는 쉽지만 벗어나긴 쉽지 않다. 사람들은 고마움의 기억(특히 집단에서의)을 그리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편이어서 아차, 이건 아니지 싶어 발을 빼려거나 일 분담을 요구하는 순간, 배신자, 인정없는 사람, 그동안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등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이런 일상의 사소한 예 말고도 마밀라피나타파이를 시도하다가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은 정재계, 문화계를 막론하고 많다.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이후 문단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두 차례 토론회가 시도됐지만 해결의 열쇠를 쥔 당사자인 작가와 출판사들의 침묵은 단단한 벽과도 같다. 서로 독자 눈치를 보면서 바람이 잦아들길 기다리는 모양새다. 한 사람의 문학 인생을 건 발언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문단의 쇄신을 위한 호기를 놓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에 새 소식을 기다리는 독자도 지쳐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성장 동력을 잃어버려 분명히 내부혁신이 요구되는 경우도 간언하기가 쉽지 않다. 타성에 젖은 임원진은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설령 안다 해도 은퇴할 때까지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안주한다. 개혁의 뒷감당이 버거운 것이다. 직원들은 후발주자의 추격이 목덜미까지 다다랐음을 느끼면서도 살얼음판을 걷듯 하루하루를 버틴다. 배가 기운 것을 알지만 달리 탈출방법이 없다.

 정치권은 더 심하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친노니 비노니 하며 이전투구 하는 두 세력 사이의 갈등 골을 누가 중재할 것인가. 정치는 협상과 타협이 전부라고 하는데, 협상과 타협의 결과를 인정하기는커녕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혀 토사구팽 당하는 마당이니 누군들 마밀라피나타파이를 교환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고언이 어려운 이유다.

 '미묘한 눈빛'이란 표현은 낭만적이지만 상황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이른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꼭 필요하지만 목을 내놓고 나서기엔 나를 진심 응원해줄 배후가 없다. 눈치게임을 벗어나 먹느냐 먹히느냐의 치킨게임이 될 수도 있으니 자, 오늘도 부지런히 눈동자를 굴려보시라. 어떤 단어의 회자는 시절과 세태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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