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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매미 울음이 절정을 이루는 중순을 접어들면서 염세(炎勢)의 한낮 불볕 더위라해도 새벽에는 홑이불을 끌어당기게 한다. 새삼 자연의 섭리에 고개 숙여진다. 매미는 한낮은 물론 해그름 뿐 아니라 야간도 상관없이 제철을 맞아 울기에 여념이 없다. 주민이 소음공해로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초등학교가 있어 이른 아침과 해그름에 운동장을 가끔 찾곤 한다. 해그름에는 자전거를 타기도 하지만 이른 아침에는 그냥 걷는다.

며칠 전 오후에 초등학교 저학년 다섯명과 함께 생태체험을 위해 운동장을 찾았다. 울지 않으면 쉽게 찾을 수 없는 직박구리의 사냥을 피해 벚나무 가지를 요리조리 맴도는 매미는 그날도 앙팡지게 맴맴 울고 있었다. '우는 것은 수컷이며 소리가 우렁찬 것은 건강한 개체며, 암컷 매미는 수컷의 소리를 따라 모여들며, 수컷은 그 중에 암컷을 선택하여 짝짓기를 하며, 매미소리는 암컷에게 존재를 알리는 그들만의 신호인 셈이다' 등을 설명했다. 아이들은 설명보다 매미잡기에 더 관심을 두었다.
 
매미도 생명체임을 강조하고 함께 살아가야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이 한 학생의 뒤를 따라 철봉대로 우루루 몰려간다. 뒤따라 갈 수밖에 없는 나는 이미 익숙한 듯이 안정된 자세로 철봉에 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매달려있는 상태를 확인했다. 한번씩 머리에 피를 모아주면 좋다는 이야기를 내세워 따라해 보기를 요구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하지 않았다.

그 중 한 학생의 반복되는 재촉을 결코 거절할 수 없었다. 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매달리니 피가 머리에 모인다. 예전 같지가 않아 그만두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사람이 박쥐가 아닌 이상 거꾸로 매달려 생활할 수 없음을 느꼈다. 순간 도현(倒懸)을 생각했다. 도현은 거꾸로 매달아 놓거나 그러한 생태를 말한다. 음력 7월 15일과 관련된다. 서양은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바탕으로 생활하여 양력을 쓰며, 동양은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중심으로 농사를 짓는 달력을 사용한다. 달력은 양력보다 대체적으로 한 달 늦게 가며 민속에서는 양력보다 음력이 친화력이 있다. 음력 1월 15일의 정월대보름, 6월 15일의 유두(流頭), 7월 15일의 백중(白中), 8월 15일의 한가위 등 보름달을 중심으로 의미를 둔다. 그 중에서 7월 15일은 백중, 백종, 호미씻기, 우란분절, 우란분재, 조상천도날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민속에서는 백중, 백종, 호미씻기 등으로 부르며 '머슴의 날'이라하기도 한다. 불교민속에서는 우란분절(盂蘭盆節), 우란분재(盂蘭盆齋), 조상천도일(祖上薦度日) 등으로 불린다.

민속의 다양한 명칭은 모두 농사짓는 주체인 농부와 머슴과 관련이 있다. 그중 백종(白踵)은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발뒷꿈치가 희다'는 말이다. 이는 벼농사 짓느라 매일 물속에서 작업한 연유로 발뒷꿈치가 닳아 희어졌다는 현상에서 비롯된 말이다. 머슴의 날이라는 것은 한해 논농사를 위한 봄에 물대기부터 시작한 고된 일상은 백중을 기점으로 다소 한가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수확 때까지 물 관리 중심으로 농사일이 옮겨지기 때문이다. 머슴의 날은 결국 그동안 고생한 머슴들을 위한 일탈의 잔치인 셈이다.


불교민속의 우란분재는 백중과 다른 의미가 있다. 목건련존자의 효심에서 비롯되었다. 아들은 모두가 존경하는 훌륭한 수행자인데 어머니는 죽어서 지옥에 갔다. 극락에 가서 아무리 어머니를 찾아도 없자, 지옥으로 내려가 보니 한쪽 구석에서 거꾸로 매달려 형벌을 받고 있었다. 부처께 나아가 전후 사정을 이야기한 즉 효심에 감동한 부처는 7월 15일을 정해 지옥문을 열어 지옥고를 덜게하는 위신력을 발휘하게 하였다는 불교 교화방편설화이다.


살아서 감옥에 갇히는 것도 부자유스러운 데 죽어서 감옥에 갇혀 거꾸로 매달려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사회생활에서 범법행위로 구치(拘置), 감옥(監獄), 수감(收監), 유치(留置) 등 살아서 고통받는 죄인에게 일정 기간 복역(服役)을 끝낸 재소자(在所者), 재감자(在監者)에게 자격을 따져 특별하게 죄를 용서하여 형벌을 면제하는 특별 사면(赦免)과도 같은 것이다. 정약용은<목민심서〉에서 옥살이하는 사람을 동정하는 글을 남겼다. '감옥은 양계의 귀부(獄者 陽界之鬼府야)'라고 했으며 아울러 '옥에 갇힌 죄수가 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은 긴긴 밤에 새벽을 기다리는 것과 같으니 괴로움 중에서 머물러 지체하는 것이 가장 큰 것이다'라고 하여 옥살이하는 죄인을 동정하고 있다. 70회 광복절을 맞아 특별사면을 실행할 예정이란다. 대상이 되는 수인은 그야말로 거꾸로의 삶에서 광명을 찾는 것이다.


음력 7월 15일 사시를 기준으로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거꾸로 매달린 영가를 천도하는 우란분재 의식이 거행된다. 특히 '이차진령신소청 명도귀계보문지 원승삼보력가지 금일금시내부회(以此振鈴伸召請 冥道鬼界普聞知 願承三寶力加持 今日今時來赴會)'를 귀담아 새기면 우란분재의 의식의미를 짐작하게 된다.

원효 스님의<발심수행장〉에는'누가 오라고 유혹하지도 않는 지옥에 많은 사람이 가는 것은 몸이 짓는 오욕을 보배로 여기는 망심 때문이다(無誘惡道多往入者 四蛇五欲爲妄心寶)'하였다. 모두 새겨야할 교훈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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