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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에 와온을 찾았다. 이곳의 물길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므로 해가 짧은 겨울철의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 순천만의 공기는 나의 깊은 심장 속까지 파고든다. 먼 길을 숨 가쁘게 달려온 나에게는 청량제와도 같았다. 도심 속 빌딩 숲에서 사는 사람이 와 보지 않고서야 만경창파의 싱그러운 이 풍경을 알지 못할 것이리라. 

 순천만은 강 하류에 삼각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 주는 곳이다. 쌓이고 쌓인 갯벌에 물이 빠지고 나면 바다의 함초들이 터를 잡고 살게 된다. 그 삼각주에는 육지의 식물들도 같이 자란다고 한다. 갯벌은 농부가 봄에 못자리를 만들어 놓은 것 같이 편편하다. 중간 중간에는 실금이 드문드문 그어졌다.

 그 금을 경계 삼아 갯벌도 주인이 있어서 사고팔고 한다. 매매 가격의 기준은 꼬막의 수확량으로 한다. 물이 왔다 갔다 하는 바다에서 어떻게 분간을 하는 지. 눈짐작을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눈썰미가 놀랍다.
 와온 마을의 뒷산은 소가 편안하게 누워 있는 형상을 하였다. 소는 등이 따뜻하여야 잠을 잘 잔다. 그래서 소 등에는 두툼한 거죽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것 같다. 산의 지형이 영락없이 누워있는 소의 형상이다. 그래서 와온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예부터 천석꾼의 살림도 시작은 소 한 마리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누워있는 소는 부자를 상징하는 증표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주위의 어촌 중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마을이 '와온'이란다. 하기야 여기 사람들은 자손 대대로 갯벌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살아오지 않았겠는가. 갯벌이 전답과도 같으니 더 없이 중하게 여겼을 것이다.

 지는 해가 제철을 맞은 봉선화 꽃빛이다. 석양은 길게 뻗은 갈색 구름 뒤로 숨어든다. 저들도 지상으로 오려니 수줍은 듯 실웃음을 띠며 내려앉는 춤사위가 고매하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갯벌은 붉은 노을을 받아먹는다. 

 갯벌 속에는 물을 방글방글 내뿜는 갯고둥, 눈알고둥이며, 흙을 곱게 곱씹어 가며 종족들을 불려 나가고 있을 바지락, 새꼬막, 참꼬막, 옆으로만 갈 줄 아는 방게, 진흙에 처박힐수록 눈이 불거진 짱뚱어들이 간지럼을 태우며 즐기고 있을 터이다.

 수많은 생명체의 터를 잡아 번식하여 여러 문중을 이루어 낙원을 꿈꿀 것이다. 밀어내지 않고 포옹하며 길러내는 갯벌은 태풍이 불어도 검고 차진 본심으로 생명을 보듬어주겠지. 갯벌 속엔 저마다의 작은 안식처를 위해 구멍을 뚫고 살아가는 짱뚱어처럼.  우주의 공간에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 나름대로 삶의 터전을 뚫어가며 종종걸음을 치며 살아간다.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저 생명체들과 같지 않으랴. 어둠이 짙어오면 제각기 집을 찾아 하나둘 불을 켠다. 해가 뜨면 일터로 향한다. 나날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조금만 비위에 거슬리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집을 부린다. 제 집을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몸을 움츠리면서 눈이 더 튀어나오는 짱뚱어처럼.

 지식이 있는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데. 나는 아는 것도 없고 인정도 많지 않다. 하지만, 오늘은 그들보다 내가 더 느긋하다. 맑은 공기를 마시니 신선이 따로 없다. 만경을 이루고 있는 저 갯벌에 취해 마음이 풍만하다. 달님이 갯벌을 향해 떠오르다가 나의 찻잔에 빠졌다. 그러나 나는 달님을 건져내지 않고 그대로 마셔 버렸다. 이 만해에 사로잡혀 갈 길을 잊었다.

 순천만의 낙조는 마법을 부린다. 와온에서 지는 해, 하나는 산 위의 소나무 가지 사이로 숨어들고, 두 번째는 갯벌 속으로 빠진다. 또 하나는 내 가슴에 안긴다. 온기를 품은 땅에서 느슨해진 나의 생활에도 따듯한 온기 하나 안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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