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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내년 4월 총선을 7개월여 앞두고 정치권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여야 각 정당들은 공약을 준비하는 등 이미 선거 채비에 들어간 상태다.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 행보는 부쩍 늘었다. 정치신인들의 짬짜미 얼굴 알리기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울산의 한 야권 유력인사는 이미 총선 출사표까지 던졌다. 내년 4·13 총선을 아홉 달이나 남긴 7월 초, 그것도 메르스 사태의 와중에 난데없이 출마를 선언했다. 민의를 대변하겠다는 사람이 민심을 그렇게도 못 읽느냐는 비판을 무릅쓴 출사표였다. 지역의 다른 야권 출마 예정자들도 지지층 외연 확대와 조직 정비를 꾀하는 등 이미 일전을 준비 중이다. 당선 고지를 향한 대장정이 사실상 시작된 셈이다.

 사정은 여당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울산의 6개 지역구를 독차지한 새누리당 현역과 도전자들은 출마선언만 안했을 뿐 이미 '작전'에 들어간 상태다. 내달 말 추석 연휴가 지나면 사실상 총선정국이다. 자천타천 출마 예상자들의 지역구별 명단도 속속 빈칸을 메워가는 중이다. 하지만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면면들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사견이다. 저잣거리의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출마 예상자들의 명단에는 익숙하다 못해 피로감이 누적된 식상한 인물이 적지 않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각설이형' 출마 예상자와 단골 선거꾼들도 무더기다.

    그들이 출사표에 담을 출마 명분이나 비전 따윈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지나치게 냉소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으나 그들의 총선 행보에서 불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이 연상되는 건 무슨 연유일까? 선출직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나로선 이들의 총선 열의가 부럽기보다는 측은지심이 앞선다. 이런 생각의 한 귀퉁이에는 정치권, 특히 국회에 대한 반감이 분명 자리하지 싶다. 정치 무관심을 넘어 혐오감까지 낳은 행태를 꼬집는 말들은 단연 압권이다. 대충 추려 소개하면 이렇다. '입법부 아닌 놀부, 국회의원 아닌 국해의원, 민생국회 아닌 민폐국회, 식물국회이자 신물국회, 법 못 만드는 불임국회, 세비만 빼먹는 얌체의원들의 뻔뻔국회' 등등…. 편린을 확대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국회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짐작하고도 남는 수식어들이다. 국회 무용론이나 해산론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의 비난에 아랑곳할 이들은 아니다. 그들은 부처같은 미소를 머금고 오늘도 대감 행차 중이다.

 이쯤에서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그는 이달 초 '자성론'을 강조하며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의 고백은 어쩌면 국민을 향한 현대판 석고대죄였을 수도 있다. 올해 52세 창창한 나이다. 국회의원 선수(選數)면에서 퇴출 대상으로 거론된 인물도 아니다. 마흔에 고향인 경남 거창군수에 당선된 뒤 두 번의 경남도지사를 지냈다. 청문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이명박 정부 땐 국무총리 후보로 발탁되기도 했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선 3위로 최고위원에까지 올랐다. 새누리당의 차세대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한 그였다. 그런 그가 총선 불출마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의 결정을 놓고 정치권에선 다양한 해석을 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불출마 선언문을 읽은 뒤 제기된 추측들이 그의 '진정성'을 덮을 정도로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선언문에서 '최연소 군수, 도지사를 거치면서 몸에 베인 스타의식과 조급증'을 자신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초심은 사라지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귀가 닫히고 내 말만 하려고 하고 판단력이 흐려지고 언어가 과격해지고 말은 국민을 위한다지만 그 생각의 깊이는 현저히 얕아졌다"고 고백했다. "이런 상태에서 다음 선거 출마를 고집한다면 자신을 속이고 국가와 국민, 지역구민께 큰 죄를 짓는 것"이라 했다. 그는 "전 세계가 문을 열어놓고 무한경쟁을 하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민국이 살아나려면 정치도 진정한 실력과 깊이를 갖춘 사람이 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가 국가와 미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한 상황에서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과 진솔한 반성의 글은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물론 김 의원의 반성문 한통이 정치에 대한 국민정서를 바꿀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권력 맛에 취해 묻지마식 출마로 일관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기에는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위기에 처한 나라경제와 피폐한 민생은 안중에도 없고 성폭행 사건에 뇌물, 자녀 취업청탁까지 온갖 악행의 산실이 된 곳이 어딘가? 장밋빛 공약으로 표를 얻어 금배지를 달고도 약속 이행은커녕 산적한 지역현안은 뒷전인 곳은 또 어디인가? 새누리당 공천장이 당선의 보증수표가 되는 울산에서 제2의 김태호를 기대하는 건 부질없는 짓일까? 의원선수 쌓기가 미덕이고, 70~80세를 목전에 둔 고령에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노욕이 대세인 울산의 정치토양에서 "바랄 걸 바라야지"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김 의원의 절절한 고백에 가슴 뜨끔했을 사람이 비단 새누리당 현역뿐이겠나. 국민 앞에 석고대죄의 반성문을 써야할 쪽은 야당 인사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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