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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포의 포경선 선장이 쓴 고래잡이 일지가 있다. 지난 2004년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 장생포 선적 제5진양호 김수식 선장이 1979년~1980년까지 2년 동안 작성한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다. 우리 포경사와 해양산업의 변천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이다. '1979년 10월 26일 오전 7시 45분 홍도 인근 해역에서 밍크고래 발견'을 시작으로 몇 시에 명중했고 하루 한 두 마리를 잡았는데 크기는 어느 정도라는 등의 상세한 내용이다.

 포경 장소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3·4월엔 서해 어청도 부근, 5·6월에는 울산 동구 화암, 7월에 경북 죽변, 8월 경북 울릉도, 9월 경북 포항 구룡포 해역, 10월과 11월 서해 홍도와 흑산도 등이다. 이를 통해 당시의 고래 개체수를 짐작할 수 있고 울산을 포함한 동해바다를 고래바다(鯨海)라 명명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19세기 울산 방어진 등 우리 해안에 출몰했던 황당선(荒唐船 또는 異樣船)의 대부분이 포경선이었다는 사실과 지도에도 없던 독도를 발견했다는 사실도 일기를 통해서 알았다. 박구병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제국의 포경선들은 동해바다에서 엄청난 수의 고래와 맞닥뜨리며 환호하는 가운데 독도 발견 당시의 묘사와 위치, 경위도, 그림 등을 일기로 남겼다.

 울산에도 귀중한 옛 일기가 남아 있다. 하나는 '부북일기(赴北日記)'로 아버지 박계숙이 1605년부터 기록한 것과 아들 취문이 1644년부터 경험한 함경도 국경 수비 근무 기록이다. 또 하나는 1870년 20세 때부터 83세로 사망할 때까지 64년 동안 쓴 '심원권일기(沈遠權日記)'이다. 부북일기는 17세기 초 조선시대 군대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돼 있어 드라마나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이 가능한 원형이다.

 심원권일기는 울산의 유생이 부모상 기간 3일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다. 쌀값 등 물가 변화와 기후, 영농방법과 인간관계와 교류내용이 기록돼 자료가 부족한 조선시대 계량경제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

 울산바다에서는 지금도 고래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고래바다여행선 홈페이지에는 지난 1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돌고래떼 수 천마리를 발견했다고 밝히고 있다. 매일 항해일지를 남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원법 20조에 따라 의무적으로 선내에 비치하는 일지, 선내 사건이나 상황을 기재한 문서인 항해일지(logbook)가 아닌 인문학이 담긴 탐경(探鯨), 관경(觀鯨) 일기를 남겨주길 바란다. 보다 쉽고 흥미로운 표현으로 기록한 관경일기나 탐경일기를 작성한다면 뒷날에 반드시 역사적 자료로 활용될 터이다. 

 기록되지 않은 문명은 전달되지 않는다. 화려했던 아즈텍 문명이나 잉카 문명, 마야 문명은 이미 소멸되고 전하지 않는다. 기록하지 않았거나 기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조선은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남겼다. 왕의 일거수일투족과 왕의 숨소리, 얼굴색, 기분상태와 그날의 대화내용까지 파악할 수 있다. 역사는 기록의 산물이고 기록의 힘은 역사에 오래 남아 대대로 전달된다.

 고래바다여행선이 고래를 발견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나는 '관경일기'를 꿈꾼다. 누군가 고래일기를 작성해 주길 바라며 오늘의 기록이 내일의 역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정해진 항목을 채워 넣는 항해일지 외에 바다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 줄 고래일기 말이다. 우리 곁에 다가 온 고래 떼의 멋진 유영과 그들이 말하는 메시지를 적어두자. 눈앞에 펼쳐진 찰나의 모습을 기록해 훗날 사람들이 울산에도 '해양문학'이 있었다고 기억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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