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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
울산지역본부장

처음 농협에 입사한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은행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 숫자는 적어도 15명 이상이었다. 50명 이상 되는 큰 지점도 있었다. 특히 행원에서 지점장 대리라는 책임자로 승진을 하면 주위 분들이 결재용 도장을 승진 선물로 주고는 했다. 지점장은 승용차와 운전기사가 배치되는 은행원의 꽃이면서 규제금리 시대에 자금배분 권한을 가진 막강한 자리이기도 했다.

    공공요금 마감일이 되면 중국집에서 배달해 온 자장면으로 5분만에 점심을 해결하기도 했고, 재산세 납부 기일이 되면 사은품을 들고 친척집을 찾아 재산세 방문 수납에 나섰다. 당연히 납부해야 할 세금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별로 재산세 수납 목표를 부여하고 추진 실적을 독려하던 시절이었다.

 서툰 주산 실력으로 전화요금 세목별 합산을 하던 아픈 추억도 있다. 또 은행 마감시 대체금액 100원이 맞지 않아 전 직원이 밤 늦게까지 퇴근도 못하고 당일 거래된 모든 전표를 뒤지는 일, 현금 입출금을 담당하는 출납업무를 보다 보면 잘못 지급하는 출납사고가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가끔씩 마음씨 좋은 고객을 만나 돈을 돌려 받는 행운도 기억이 난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은행 지점의 모습은 어떤가? 무엇보다도 은행거래 중 창구를 통한 거래비율이 과거에 비해 대폭 감소했다. 입출금 및 자금이체거래만 놓고 보면 2006년 6월 중 은행 전체 거래 중 창구거래 비중이 25%, 비대면 거래(인터넷뱅킹 등)가 75%를 차지했으나, 올 6월 중에는 대면거래가 11%로 줄어든 반면 비대면 거래 비중은 89%로 높아졌으며, 2015년 2/4분기 중 인터넷뱅킹 일 평균 이용건수는 7,725만 건, 이용금액은 40조 4,627억 원에 달한다.

 이런 금융환경 변화로 지점 근무직원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이제는 지점 창구에서 찾아오는 고객만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찾아 다니는 Out-Bound 마케팅 활동의 중요성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또 다른 변화는 지점 책임자의 권위가 많이 추락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책임자로 승진하던 1990년에만 해도 농협고시로 불릴 정도로 승진이 어려웠고, 일단 승진되면 직원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른 책임자로서의 권한과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책임자로 승진해도 종전과 동일하게 창구에 근무하면서 직원과 책임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도 하며, 추진 실적에 대한 개인별 평가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많이 변한 직급은 지점장이 아닐까? 지점장실에서 찾아오는 고객을 맞이하던 호시절은 끝난 지 오래이고, 금리 자유화 및 자금잉여시대를 맞아 여신 우량 고객을 찾아 발로 뛰는 마케팅을 해야 하는 가장 힘든 자리로 바뀌었다. 특히 분기별 업적평가제도를 통해 압박을 가해오는 사업실적에 대한 부담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룹별 최하위에 해당할 경우 즉시 대기발령이라는 가혹한 제재조치가 취해지기도 한다.

 다음은 취급하는 업무의 복잡화이다. 과거에는 금융업종간 칸막이가 있다 보니 은행원은 대부분 전통적인 여수신 업무와 환 업무 및 공과금 수납 등 부대업무를 취급했으나, 지금은 규제 완화 덕분에 다양한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해외펀드와 복잡한 파생결합증권에 대해서도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은행원으로 살아 갈 수 있다. 따라서 각종 통신연수 또는 사이버 연수과정을 통해 업무에 필요한 전문지식 습득 및 금융 관련 자격증 취득을 위해 은행원들은 퇴근 후 또는 주말을 이용해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30년 후의 은행 지점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지점과 직원의 숫자가 대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뱅크-은행의 종말을 고하다'의 저자인 크리스 스키너는 향후 거래장소로서의 은행지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고객 접촉방식이 비대면 방식의 디지털로 빠르게 바뀌면서 지점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최근 10년 동안 은행 지점 절반 이상이 폐점됐으며, 북유럽 대부분의 은행은 신규고객 등록시 종이 방식 대신에 디지털 신분증을 활용하고 있다. ABN암로 네덜란드에 따르면 주중에 작은 규모의 지점에서는 2명의 직원이 하루에 20명 정도의 고객업무를 처리한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전자통장 발급고객에게 금리와 수수료 인하혜택을 부여해 종이통장 발급을 억제하고, 2017년에는 60세 이상 고객에만 종이통장을 발급하는 등 전면적인 전자통장 운영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했다. 만약 종이통장을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면 고객들은 은행을 더 방문할 필요가 없으며, 언젠가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던 비디오가게와 서점이 하나 둘 사라졌듯 은행 도 비슷한 운명의 길을 걸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그 많던 은행 지점과 은행원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날이 현실로 다가올 날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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