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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가 울산시립미술관 건립부지 전면 재검토 기사를 내보낸 이후 시립미술관 부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 울산시가 당초계획을 바꿔 부지 재검토에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울산을 대표하는 공공시설은 미래의 울산을 짓는 중차대한 일이다. 각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알아본다는 의미로 전문가들의 기고를 싣는다. 울산이 세계도시를 지향하고 산업과 문화가 어우러진 특색있는 도시로 나아가는데 일조를 해주길 기대한다. 편집자

건축가
울산시립미술관 건립 자문위원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잘 사는 도시' 울산은 최선진국 수준의 산업도시다. 산업도시는 문명의 꽃이다. 그러나 도시의 품위와 질을 담보하는 역사성과 문화의 이미지는 함께하기 어렵다. 울산이 그렇다. 역사와 문화가 없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지속가능한 도시의 출발은 도시 역사를 드러내 다시 세우는데 있다. 울산에서 도시역사를 드러낼 장소는 울산읍성과 북정공원 일대 옛 관아구역이다.

 왜인가. 울산은 원삼국시대 진한 12개국 중 하나인 우시산국, 즉 '울뫼나라'로서 긴 성읍국가의 역사를 가졌다. 그로부터 천년이 흘러 신라 관문(동해구)인 울산은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국제무역항으로 성장했고, 그 시원(始原)의 중심에 읍성과 읍락이 있었다. 따라서 읍성 내 읍락은 울산의 발상지이며 모태 공간이다. 서양의 경우 도시의 대표 성당이 있는 곳이 그 도시의 발상지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 그러하고 밀라노와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 그렇다. 울산의 노트르담과 두오모는 어디인가. 그곳은 읍성으로 둘러싸인 내부 영역 즉 읍락이다.

 현재 울산의 읍성과 읍락은 어떤 상황인가. 읍성 사대문은 위치만 비정할 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동문~북문에 이르는 북측읍성은 지면상 흔적만 남았다. 동문과 북문을 잇는 큰 길, 장춘로와 동헌서 길로부터 남측의 읍성과 읍락(전체의 80%)은 복원이 불가능하도록 건축밀도가 높은 상업지역으로 변모했다. 도시 역사를 증거하는 나머지 관아구역은 장춘로 북쪽에 유구만 남았거나(동헌 등 일부 복원) 공원화(북정공원)됐다. 전체 읍락의 10%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럽다.(나머지 10%는 아파트 단지에 편입됐다.)

 과거 울산시(중구)는 중구 장기발전계획의 선도사업으로 성곽도시 재창조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시행도 전에 관아지역을 침범해 둘러싼 아파트 건축사업에 밀려 포기한 듯하다. 울산 역사를 구현하는 두 개 축 중 하나인 읍성 복원은 울산이 역사문화도시로 나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사업임에도 말이다.

 이런 전제에서 이곳에 미술관이 들어설 것을 생각해보자. 당초 선정한 울산초 부지는 문화재 발굴결과 객사 유구가 나와 문화재청으로부터 시립미술관 부지로 사용이 불가능하게 됐다. 그럼에도 시는 이 관아구역을 역사공원으로 지정하고서도, 울산역사를 어떻게 드러낼지 고민하기 보단, 어떻게 여기에 미술관을 지을까에 더 골몰한 듯하다. 

 이에 필자는 시가 다음 세가지를 먼저 고려할 것을 권고한다. 첫째 관아구역인 이 신성한 땅이 스스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아는 일이다. 둘째는 계획 부지의 물리적 조건을 검토하는 일이며, 셋째 계획부지에 접해 추진중인 대단지 아파트사업의 문제다. 특히 부지면적 협소와 형태의 부적정성, 관아구역의 동서분할이 문제다. 당초 시가 계획한 미술관 부지면적은 4,500평인데 그 중 3,300평이 울산초 부지(전체의 73%)고 북정공원 부지는 1,200평에 불과하다. 시는 이 3,300평의 대체부지로 중부도서관 부지연계를 검토했는데, 그 부지는 1,300평 정도로 북정공원과 합해봐야 2,500평이다. 따라서 당초 계획보다 2,000평이 모자른다.

 부지형태 또한 동서간 폭이 좁고 남북간 길이가 폭의 3배가 넘는 매우 기형적인 형태로서, 미술관 건축에 알맞은 땅이 아니다. 게다가 이 좁고 긴 땅을 사이에 두고 동측 객사와 서측 동헌이 높이 3층 정도의 건축물로 인해 공간·시각적으로 분할되는 등 관아구역 전체 경관을 심하게 훼손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특히 이 관아구역은 앞으로 건설될 아파트에 둘러싸이게 된다. 심지어 대규모 아파트단지 일부는 장차 복원 가능성이 있는 읍성 내부로까지 분포해 읍성이 아파트 동 사이에 있게 된다. 아파트와 관아지역이 인접하는 형국이다. 읍성과 객사의 복원 당위성이 없어짐은 물론이다.

 필자는 건축가로서 아파트라는 개인 살림공간과 관아구역(혹은 미술관)이란 공공공간이 아무 마찰없이 공존할 수 있다곤 상상하기 어렵다. 도시 스케일의 부조화는 물론 도시경관의 부적절함 등 입지의 태생적 한계도 있다. 두 곳이 상생할 방안은 읍성을 복원하고 그 외부에 아파트 단지를 형성하고, 읍성 내부 아파트 부지는 취소해 녹지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있을 뿐이다.

 미술관은 어디에 입지해야 하는가? 필자가 꿈꾸는 미술관은 바람과 햇빛과 물이 서로 조우하고, 미술관 건물이 땅 위에 선 나무처럼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곳에 들어서는 것이다. 바로 중구 태화강 공원 인근이다. 모든 자연 요소와 지정학적 관계로 볼 때 울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울산은 이미 환경부문에서 쿠츠네츠 곡선이론(산업화로 인한 환경문제는 치유할 수 있단 쿠츠네츠의 역U자 곡선이론)을 성공적으로 증명했다. 역사문화 부문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출발점은 도시 역사를 새롭게 구현하는 작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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