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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골폭포.
이정표가 서있는 정구지바위에서 얼음굴을 가보지 않을 수가 없다. 밀양 제2얼음굴이라 불리는 얼음굴은 왼쪽으로 400~500여m 올라가면 운문산 서릉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에 있다. 초입은 다소 희미하지만 군데군데 붙어있는 시그널을 참조해 올라가다보면 첫 번째 로프가 메달려 있는 바위 지대를 지나고, 가파른 바위틈을 간신히 빠져나가면 바위 밑으로 굴(窟)입구가 보인다. 밀양읍지에는 이 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손개굴(송개굴, 손가굴, 얼음굴)
석골사에서 위쪽으로 한참 올라간 곳에 있는 자연 석굴이다. 굴은 모두 3개인데, 내부는 각각 10평 정도의 넓이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오한 손기양이 부모님을 모시고 이곳에서 피난했다고 해 붙여진 석굴의 이름이라 한다.
 
# 형제굴
석골사의 위쪽 손개굴 옆에 있는 3개의 굴 중 하나이다. 여름에는 하도 시원해 제 2의 방곡이라는 말도 있다. 손 개굴과 함께 임진왜란 때의 유적으로 의병을 일으켰던 근재 이경 홍과 신사 이경승 형제가 이곳에서 상봉해 노모와 함께 한 가족이 피난했던 장소로 전해지고 있다.
 
# 얼음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곳 주민들에 의해 전해져 내려오는 얼음굴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다르다.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스승 유의태 시신을 해부한 곳이 밀양시례 빙곡으로 돼 있다. 해서 재약산 얼음골의 동의굴이 허준이 스승 유의태 시신을 해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의태가 운문산 석골사의 보양대사와 친분이 두터워 자주 왕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를 들어 운문산 얼음굴이 허준이 스승 유의태 시신을 해부한 곳이 아닐까 하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얼음굴 주변에는 크고 작은 동굴이 여러 개 있다. 그 중 규모가 가장 큰 굴은 길이 20m, 높이 4.5m, 너비 1.5m로 집채만 한 바위 3개로 이루어져 거대한 적묘를 옮겨 놓은 듯하다. 동굴 가장자리에서 약간 아래쪽에는 누군가가 불을 피워 생활한 흔적이 있으며, 위쪽은 반듯하고 매끄러운 돌침상(기단)이 있어 허준이 스승 유의태를 해부할만한 침상 크기이다. 또한 4월부터 6월 사이 동굴 내부의 온도가 섭씨 영하 3~4도까지 내려가 바위틈의 물이 1~3㎝ 두께로 얼었다가 7, 8월 사이에 천천히 녹는다는 곳이기도 하다.
 
▲ 운문산 얼음굴 입구. 밀양 제2얼음굴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황산 북쪽 계곡(밀양 얼음골 위쪽 계곡)에 유의태가 제자인 허준에게 자신의 시신을 남겨 해부하라고 한 바위굴이 이 곳일 것이라고 추정해 동의굴이라는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하지만 실제 이 굴을 찾아가보면 동굴자체가 굴(窟)로서의 깊이가 너무 옅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굴의 길이는 입구에서 불과 1~2m도 체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비바람을 피할 수 있을만한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쉽게 생각해보면 시신을 해부할 장소 즉 우선 시신(몸)을 누일 자리도 시원찮고 굴 안에 돌침대와 비슷한 것도 없어 해부를 하기엔 알맞지 않는 곳으로 판단된다. 물론 유의태 해부 이야기도 소설 동의보감에 나온 허구이지만 운문산 얼음굴이 진짜 소설동의보감에 나오는 굴이라고 일부 산꾼들은 믿고 있다.


 얼음굴을 구경한 뒤 계속 위쪽으로 가지 말고 원점회귀를 해야 한다. 길 따라 옆으로 올라가면 애를 먹기 때문이다. 다시 정구지바위로 내려와 진행방향 왼쪽으로 길을 이어간다. 정구지바위에서 10여분 뒤 상운암계곡 마지막 계류를 건넌 뒤 딱밭재 갈림길에 도착한다. 조금 뒤 범봉, 팔풍재 갈림길에 도착하고 10여분 뒤 팔풍재에서 내려오는 계류를 건너면 등로는 다소 완만해진다. 여기서 석골사까지는 자연 경관을 구경하면서 쉬엄쉬엄 내려오면 되지만 밀양에서 출발하는 버스시간표를 맞추려면 어느 정도 걸음을 재촉해도 좋을 듯 싶다. 석골사 옆 석골 폭포의 경관과 석골사 계곡의 풍류가 뛰어나기 때문에 이곳에서 산행의 피로를 풀며 다소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 석골사.
# 석골사
석골사(石骨寺)는 경남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에 소재하고 있다. 절의 창건 시기에 대해서 여러 설이 있지만, 석골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 보양이목(寶壤梨木)조에 다음과 같이 언급돼 있다. "보양(寶壤)이 석굴사(石堀寺)의 비허사(備虛師, 혹은 비허(毗虛))와 형제가 되었는데, 봉성사(奉聖寺) 석굴사 운문사(雲門寺) 세절이 연접된 산봉우리에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서로 왕래했다." 여기서 언급된 석굴사가 지금의 석골 사다. 이후 조선 영조 11년(1735년)에 함화당 의청이 중창했고, 매적당이라는 스님이 주석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적군의 소굴이 된다고 해 불을 질러 절을 태워버렸고, 지금의 절은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다.
 
# 석골폭포
석골사 계곡의 백미는 석골폭포다. 험상은 모습으로 계곡에 박힌 거대한 암벽을 타고 10여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고 장쾌하다. 칼로 벤 듯 깎아지른 벼랑이 아니라 층층폭포처럼 층층이 돌아 암벽에서, 물방울을 퉁기며 돌아내리는 폭포수가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은다. 또한 석골사 뒤편 흰덤바위봉(732m)능선 좌측계곡에는 무지개폭포가 숨어 있다.


 이밖에도 석골사와 석골사 계곡 일대에는 여러 가지 전설적인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여름철에는 전국 각처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석골폭포에서 24번 국도 버스정류장까지는 약 2㎞정도 걸어 나가야 한다. 석골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하천과 만나고 마을회관을 지나면 강변에 오토캠핑장과 편의점도 있다. 국도 옆(구) 도로에 원서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다. 석골사에서 걸어 나오기가 힘이 든다면 밀양콜택시(055-352-3333)을 이용하면 석골사 입구 주차장까지 택시가 온다. 길가로는 탐스러운 사과가 익어가고 원서마을 버스 주차장부근까지 내려오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산악인·중앙농협 정동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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