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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이번 주가 수능이다. 지금이야 '수능앓이'가 큰 이슈가 되지 못하지만 10여 년 전만해도 수능날이 다가오면 온 나라가 입시전쟁을 치렀다. 신문사의 경우 수능 100일 전에는 어김없이 '100일 데이'라는 이상한 풍속도를 박스기사로 올렸고 'D-몇일'을 아예 1면에 중계하며 요란을 떨기도 했다. 수능 당일에는 새벽부터 주요 고사장에 신참 기자들이 나가 인터뷰를 했고 수능이 끝나면 문제풀이와 정답, 예상 점수대를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필자가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국사과목이 중요한 암기과목 중 하나였다. 고조선 건국부터 해방 이후 근대화 기록까지 한눈에 꿰지 않은 학생들이 없을 정도로 국사과목은 주요 암기과목이자 입시 필수과목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정부가 몇 번 바뀌면서 교과과정도 변했고 대입제도나 입시과목도 달라졌다. 그 중 하나가 국사였다. 어느 순간부터 국사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애물단지가 됐고 입시에서는 아예 찬밥신세가 됐다. 그 사이 학교 현장에서 국사수업이 어떻게 이뤄지고 어떤 텍스트로 공부하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극히 일부 세력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교과서 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2002년 국사 교과서가 검정제로 처음 제작된 직후였다. 근현대사 교과서가 전·현 정권에 대한 편파적 서술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일부 교과서가 역대 정권의 실정을 부각하거나 공과를 함께 기술한 반면, 당시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는 치적을 지나치게 내세웠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근현대사 교과서 파동은 2004년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의 좌편향 논란을 두고 더욱 격화된다. 권철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해당 교과서가 북한과 민족해방(NL) 계열 시각에서 저술됐다고 주장했고, 일부 언론에서 이를 '민중사관' 교과서로 지칭하면서 사회적 파동이 일었다.

    기억할지 모르지만 몇 년 전 우파성향의 학자들이 주도한 교학사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은 우리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좌파 교과서의 폐해를 우려해 우파성향의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자 시민단체, 전교조 등이 봉기했다. 결국 시위와 협박에 의해 대부분의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포기했다. 당시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무산되자 좌파들은 시민 승리라고 외쳤다. 지금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적 근거는 다양성과 시장논리다. 좌파의 주장대로 국사 교과서를 시장논리와 다양성의 논리에 맡기고 외압을 배제했다면 오늘의 갈등은 없을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역사교과서 개편을 둘러싼 보수·진보 진영 간 첨예한 대립국면에서 교육부 책임론을 제기하지만 좌파의 집요함을 간과한 이야기다. 현행 검정교과서가 교육부 산하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검정절차를 밟기 때문에 얼마든지 수정가능한 것 아니냐는 입장이지만 실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교육부는 지난 2013년 금성출판사와 다른 6종 교과서 등 좌편향 논란에 휩싸인 교과서에 829건을 수정·보완 권고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강제 조치인 수정명령 권한을 행사했다. 그러나 집필진들은 교육부 조치에 불복해 수정명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냈다. 1·2심에서 수정명령이 '적법'하다는 판결에 내려졌지만 집필진들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법적저항은 물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들의 논리대로 역사교육을 학교현장에 심겠다는 의지가 차라리 집요하다. 그 집요함에 공권력이 무능한 대응을 해온 것이 오늘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제6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대한다는 응답이 52.6%로 찬성(42.8%)보다 많았다. 반대 여론이 다소 높긴 하지만 야당의 주장처럼 '국민 불복종 운동' 주장을 할 정도의 격차는 아니다. 반대논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행 교과서 체계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하지만 '단일교과서'라는 부분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층이 많다. "반복해서 가르치면 세뇌된다"는 괴벨스의 폐악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외치고 글로벌을 추구하면서 왜 역사교과서는 단일화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좌편향을 거부한다면 편향되지 않도록 사전 검정을 공론화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 교과서를 사회 보편의 합의로 만들어갈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다. 극과 극으로 치닫는 현재의 상황에서 자신만 옳고 다른 쪽은 틀렸다는 주장의 손가락질은 결국 자신을 향하게 된다. 교과서 문제가 아니라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갈등의 폭은 줄어든다. 교과서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니까 허구헌날 교과서로 멱살잡이를 하고 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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